안희연 - 알라메다
우리는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곳에 근사한 호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수를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둘렀다 살면서 그런 호수는 처음 보았다고 도대체 어떤 호수이기에 그러냐고 물어도 묘사할 수 없다고 했다 직접 가보는 수밖엔 없었다
호수에 이르는 길은 수십가지였다 우리는 공원 초입에서 지도를 챙겼다 최단 거리를 살펴보았지만 모든 길의 소요 시간은 똑같았다 나는 기억의 동굴을 지나는 길을, 그는 반딧불이의 숲을 지나는 길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가 호수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억의 동굴은 입구가 낮았다 그곳에 들어가려면 고개를 조금 숙여야 했는데 마치 어떤 시간을 향한 인사 같았다 동굴은 기억의 조도를 조절하듯 서서히 어두워졌고 서서히 밝아졌다 가장 깊은 어둠에 다다랐을 땐 낯선 기억 하나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곰곰 생각해봐도 직접 겪었던 일은 아니었다
그건 누구의 기억이었을까 골똘히 동굴을 빠져나오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가 서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여기가 분명했지만 호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노란 나비 한마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비가 내려앉은 곳에 손바닥만 한 호수가 있었다
우리는 쪼그려 앉아 호수를 보았다 묘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아름다웠고 처음 보는 빛으로 가득했다 호수를 곁에 두고 우리는 전에 없던 대화를 나누었다 반딧불이의 숲은 어땠어? 어떤 반짝임에 대해,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길이었어 그런데 너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어? 네 최초의 기억은 뭐야? 같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종종 호수 이야기를 했다 마음속에서 호수는 점점 커져갔다 어떤 날엔 세상 전체가 호수로 보일 때도 있었다 슬픔이 혹독해질수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