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 순서

사무엘럽 2021. 1. 20. 23:01

 

목성에서의 하루, 문학과지성사 얼룩의 탄생:김선재 시집, 문학과지성사 노라와 모라:김선재 장편소설, 다산책방 누가 뭐래도 하마:김선재 소설집, 민음사 그녀가 보인다:김선재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가슴을 열면 발자국이 쏟아졌다

 희고 검거나, 검거나 흰

 

 흐르고 있다고 믿으면

 지워지고 지워졌다 생각하면

 다시 돌아오는

 

 눈물을 닦으면 눈물이 났다

 

 돌려줄 손이 없을 때

 서랍은 소매를 길게 빼 물었다

 할 말을 잊은 입들이 그렇듯이

 

 꿈은 반대라는데

 왜 여전히 아침은 캄캄한 걸까

 왜 아이들은 날마다 죽을까, 사라질까

 

 들려줄 말이 없어 귀가 자라고

 바람 속을 지날 때는 숨을 참았다

 

 바닥이 가까워질수록

 모르는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살아 있다 믿으면 흐려지고

 눈을 비비면 다시 시퍼런 빛

 

 귀를 기울이자 어깨가 생겼다

 그다음에는

 얼굴이 자라고

 

 남은 것이 없어도 입을 벌리는 입들

 

 일어나면

 내가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