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 모임

사무엘럽 2021. 1. 20. 06:47

 

목성에서의 하루, 문학과지성사 얼룩의 탄생:김선재 시집, 문학과지성사 노라와 모라:김선재 장편소설, 다산책방 누가 뭐래도 하마:김선재 소설집, 민음사 그녀가 보인다:김선재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과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사람 사이에서

 식탁 위의 과일이 말라간다

 

 너는 원래 뭐였니

 원래 너는 그렇니

 

 묻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손을 바꿀 사이도 없이

 손을 잡을 의지도 없이

 

 나의 말과 손은 너무 멀다

 온도가 달라서

 아무리 불러도 거기 없다

 

 우리는 그것을 의지라고 썼다, 썼다 지웠다

 그다음에는 읽을 것이 없어서

 

 손끝에서 창문이 떨어지고

 떨어진 창문은 내내 미끄러진다

 

 사람들은 흔들릴 때만 나왔다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처럼

 흔들리다 나중에 흔들었다

 

 왜 날 보내주지 않았니

 다 가버린 뒤에는 꼭 그런 사람이 남는다

 하나를 보태면 하나가 남고

 두 개를 잡으면 하나가 모자란 사람

 

 모자란 우리들이 남아, 남은 얘기를 한다

 

 뒤집어진 계단이나 끝없이 갈라지는 입술 같은 것

 온도가 같아서

 자꾸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과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 사이에서

 이윽고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

 

 지친 두 발이 먼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