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기혁 - 숲길
사무엘럽
2021. 1. 18. 16:20
검은 구두나 하얀 구두
얼룩 구두를 신고 다니는
이곳은 당신의 취향인가요?
검은색 그림자를 매달고
태초의 컬러가 그리워, 그리워
홀로 순수해지던 말투는
당신의 산책로인가요?
이데아는 흑백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리는
지름길을 찾아 입을 벌린다
휩쓸고 간 산불을 추억하면서
추운 새벽의 조난을 떠올리면서
오른손과 왼발
왼손과 오른발
우두커니 여우비를 맞는 산새와 들짐승의 일상으로
발 없는 말들의 윤곽선을 따라나설 때
우리는 투쟁하듯 나아간다 엉금엉금
경계를 넘어간 두 손에
싸구려 큐빅 반지를 끼워둔 채로
고마워 사랑해
사랑해 고마워
길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같은 숲속에 있다
반짝이는 것들의 몸통을 상상하는 허공 어디쯤
혀끝이 멈춘 낯선 표지판 위로
또 다른 표지판을 못 박는 구조 대원의 땀방울처럼
운무의 속살은 어떤 미각에 놓이는 건가요?
빨주노초파남보, 고대의 발목 하나를 허락해주면 좋겠다
당신의 원시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방황이 무색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