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혁 - 붉은 물병

사무엘럽 2021. 1. 18. 02:42

 

소피아 로렌의 시간:기혁 시집, 문학과지성사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기혁 시집, 민음사 베개 3호, 시용 언.어.총.회, 테오리아

 

 

 내부를 훤히 알고서도

 나는 무엇인가 의심스럽다.

 

 어떤 고백을 막으려고

 하나의 주둥이만을 허용했을까?

 

 갈증을 해소한 사람들은

 단 하나의 주둥이마저

 마개로 틀어막지.

 

 투명한 페트병 속에 뜬

 1965년의

 자바,

 수마트라,

 발리.

 

 마개를 잃어버려도

 붉은 물은 쏟아지지 않는다.

 

 호텔과 리조트마다 설치된

 분리수거함

 그 체제의 수평선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알루미늄 캔들과

 뒤섞이고

 찌그러질 뿐.

 

 붉은 물은 스스로 걸어 나갔다.

 

 아무도 고기를 잡지 않는

 스네이크강에서.

 침묵을 목격했지만

 침묵할 수 없는 할 말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