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기혁 - 라디오 데이즈
사무엘럽
2021. 1. 17. 04:27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법 큰 떨림이 온다
깊은 밤 틀어놓은 전인권의 라이브처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긴 협주곡처럼
나의 연인은 김광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로 등을 맞대고 벽 너머 얼굴을 떠올려보는 이 한참,
우리에게 불면을 덮어주던 떨림을
운명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몇 통씩 항의 전화를 받는 날이면, 근황보다 먼 곳을 물었다
무심코 긁적인 자리마다 진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하드보일드한 나의 심장도
두터운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무단 송출 채널
천장에서 어둠을 갉아대는 소리
한낮의 적의가 뭉쳐지는 소리가 들릴 때
박히지 않는 못의 대가리를 후려치다 끝끝내
제 속을 짓이기고 마는 운명
피 묻은 안테나를 세우면 온몸으로 날리던 엄살이 지글거린다
에덴의 시험 방송 어디쯤
귀신을 닮은 손금에도 스테레오가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