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혁 - 창문극장

사무엘럽 2021. 1. 17. 04:25

 

소피아 로렌의 시간:기혁 시집, 문학과지성사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기혁 시집, 민음사 베개 3호, 시용 언.어.총.회, 테오리아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것 한둘은 있다.

 

 매일 아침 불투명을 일으켜 세우는 햇살 아래 나는 뜨겁게 달궈진다.

 

 바깥쪽의 눈과

 안쪽의 귀는

 둘 사이를 오가는 타인의 입술마저

 하나의 평면 위에 버무리려 한다.

 

 어른거리는 나비가

 나비넥타이를 맨 '행인 1'과 함께 다녀가고

 아름다운 구속을 당기는 얼굴엔

 

 신문지상의 용의자들과 비슷한 인상이 번져 있다.

 

 기하학적 무늬의 간유리에 부딪히는

 저 불규칙한 윤리들을 보렴,

 석양보다 붉게 물들던 서로의 상처에 얇은

 스카치테이프를 붙이며

 

 한때는 돌을 들던 사람들도 진심으로 떨어야 할 외풍을 걱정한다.

 

 지난밤 창을 두드리던 '취객 1'이

 분실한 대사의 주인공들을 부를 때

 불 꺼진 방 안에선

 흐느낌의 먼지조차 지문을 달고 흩어졌다.

 

 부딪친 창가를 떠난 뒤에야 연기할 수 있는 눈물을 흘리면

 낮은 빗소리에도 되돌아올 것들이 보일 텐데

 

 커튼콜이 끝나도 자리를 뜰 수 없는 일생으로

 마침내 재가 된 신부를 떠올리는 새벽

 

 어른거림이 삶에 대한 애도라면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사람과 '사람 1'의 경계마다 요물이 산다.

 귀신의 가슴께에도 창가를 스치는 배경이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