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혁 - 물의 오파츠

사무엘럽 2021. 1. 17. 01:45

 

소피아 로렌의 시간:기혁 시집, 문학과지성사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기혁 시집, 민음사 베개 3호, 시용 언.어.총.회, 테오리아

 

 

 물병자리에 담긴 물이 쏟아지길 바라는

 사하라의 소녀처럼

 갈증이 찾아올 때마다

 앞뒤 없는 직전을 고백하는 상태들.

 

 가슴 한가득 무지개를 품고

 투명함 속으로 두 눈을 드미는

 검고 창백한 구름을 구원으로 여기지 않도록

 

 천사여,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떼어

 수면에 비친 태초의 창문에 매달아주오.

 

 일렁이는 물결을 열면

 그곳은 아담과 이브의 입맞춤 속.

 히드라의 낮잠이 떨어지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우물.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잉크가 찍어낸

 엘리자베스 시대의 눈물.

 

 함성의 절정처럼 멍하게

 정지한 순간에도

 한 컵의 물은 고심 중이다.

 

 얼어붙을 것인가?

 끓어 넘칠 것인가?

 

 차례로 물을 거쳐 간 사람들의 애도가

 맹탕이 되어가는 동안

 

 조물주는 궁금했다.

 캡슐에 담긴 창세기의 시간이

 쓰디쓴 알약처럼 식도에 걸려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