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재연 - 사라진 것들
사무엘럽
2021. 1. 16. 00:44
뜨거운 다리미가 사라지고
하얀 셔츠에는 자국이 남았다
그것이 마음에 든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신발처럼
침대 밑의 구두처럼
나의 발목은 가느다랗고 예쁘다
누구에게라도 선물할 수 있다는 듯이
다른 치수를 주문했다는 듯이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채
배달된 다이어리가 마음에 든다
검은 문신을 기다리는 리틀 톰과 같이
종이들의 갈색 피부가 지닌 조용함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재봉틀의 스티치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운 자국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는 뚜렷한 세계
열여섯 살에 팔아 치운 우드피아노가
어디선가 만들어내고 있을 음악
내가 좋아하는 발목은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모든 최소한의 고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