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 1940년대의 어떤 시

사무엘럽 2021. 1. 16. 00:26

 

흑백, 문학과지성사 네모, 문학과지성사 반복, 문학동네 이노플리아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386 문학과지성 시인선, One color | One Size@1

 

 

 1940년대의 어떤 시와 함께 볼펜이 떨어졌다 알 수 없는 빨래를 다듬는 다듬이는 없는 여자는 붉은 옷 위에 문자를 써놓고 다니는데 세탁기는 돌아간다 나는 너는 커피를 마신다 혐오스러운 말투 은근한 전화벨 방충망 속의 사막 뻐꾸기 종다리 까치집 밑의 쓰레기 그는 함부로 반말하는 경비다 그는 경기병이고 지붕을 가지고 있지 않다 1940년대의 어떤 시가 주는 영향은 심오하다 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영향을 함부로 받고 있고 사람들은 의심하고 또 나는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시를 모르고 몰라도 된다 아스팔트는 광대뼈에 빛나는 별과 어느덧 닮았다 명명에 속지 마라 명명은 멍멍과 차이가 없다 바퀴가 구른다 아이들은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 잘 놀고 잘 죽는다 세탁기는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대추나무 가지의 형태에 무한한 열등감을 느낀다 무한은 검고 하얗고 찬란하다 여기저기 우회로가 많다 샛길이다 자살자와 혼동되는 노동자가 철교 위에서 노동하고 있다 숭고한 노동과 노동의 부인의 결정체 불타오르는 사이를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것은 흔한 환멸이다 환멸의 유리잔과 환멸의 물방울과 그 밖에 물개 야구방망이 장갑 그물 학꽁치와 사자들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서만 만나는 포유동물 노트 사이의 스프링과 함성 쏟아지는 비난의 이명 난바다에 내리는 눈물 마지막 남은 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잎사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거친 사나이 항문이 부드러운 뚱뚱한 여자 마른 장작개비의 다섯 배! 분명한 실패! 1940년대의 어떤 시와 영원한 불능과 수긍......마룻바닥에 튕기는 송진 묻은 핸드볼공처럼 움직인다

 뭐가? 내가?

 마지막 두 줄은 늘 필요가 없다

 젓가락과 포크가 심대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착각하고들 있다

 잘 있어라 행주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