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 - 크레바스에서 외 5편 (2018 경향신문 신춘문예)
<크레바스에서>
왁자지껄함이 사라졌다 아이는 다 컸고 태어나는 아이도 없다 어느 크레바스에 빠졌길래 이다지도 조용한 것일까 제 몸을 깎아 우는 빙하 탓에 크레바스는 더욱 깊어진다 햇빛은 얇게 저며져 얼음 안에 갇혀 있다 햇빛은 수인처럼 두 손으로 얼음벽을 친다 내 작은 방 위로 녹은 빙하물이 쏟아진다
꽁꽁 언 두 개의 대륙 사이를 건너다 미끄러졌다 실패한 탐험가가 얼어붙어 있는 곳 침묵은 소리를 급속 냉동시키면서 낙하한다 어디에서도 침묵의 얼룩을 찾을 수 없는 실종 상태가 지속된다 음소거를 하고 남극 다큐멘터리를 볼 때처럼, 내레이션이 없어서 자유롭게 떨어질 수 있었다 추락 자체가 일종의 해석, 자신에게 들려주는 해설이었으므로
크레바스에 떨어지지 않은 나의 그림자가 위에서 내려다본다 구멍 속으로 콸콸 쏟아지는 녹슨 피리 소리를 들려준다 새파랗게 질린 채 둥둥 떠다니는 빙하 조각을 집어먹었다 그 안에 든 햇빛을 먹으며 고독도 요기가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얼음 속에 갇힌 소리를 깨부수기 위해 실패한 탐험가처럼 생환 일자를 쓰기로 한다 햇빛에 발이 시렵다
<집 속의 겨울>
그 숲속에는 집이 있었다
겨울은 하얀 블라인드로 끊임없이 기억을 재생하는 집
깨끗한 눈송이가 사선을 그으며 내릴 때
집주인의 손에서 영사기는 돌아가고
이후 끝없이 되풀이될 에필로그가 된다
쏟아지는 눈발
기억은
발을 뒤덮고
하루가 지나
무릎까지 덮은 후
한 달이 흘러
어느덧 가슴까지 차고 오른다
한치 앞을 걷지 못하게 붙들어두는 차가운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온다
무언가 떠오를 때에는
발끝에서부터 양말이 젖곤 하였다
깨끗한 창문 밖 깨끗한 눈발이 만드는 프로젝터에서
흘러내리듯 상영되는 영화는 누구의 잠 속에 있던 꿈일까
몸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이불을 덮고
방의 스위치를 내리면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반사되며 흩어지는 기억들
고산지대에도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평원은 매일 떨어지는 꿈을 꾸며 고산지대를 닮아 가고
웃자라며 흰색을 버리는 눈들
쌓인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면 발목이 점점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하체부터 사라져 가는 사람
끝없이 자라는 눈발과 녹지 않고 쌓이는 눈
창밖으로 내려온 만년설
마음속에서 끝없이 재생되는 장면은
시간을 모른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처럼,
어머니의 새 가방에서 소지품이 와락 쏟아지던 장면처럼.
기억은 저만의 달력을 따로 가지고 있다
하얀 내면에서 그대로 얼어붙은 시간을,
<계단>
높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폭포가 된 것처럼 무언가가 조각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늙은 여자가 아래로 내려가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사이는 멀어지면서 낮아졌다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계단은 어디에서나 나타났다
어린 시절 다락방 올라가듯 숨죽여 오르던 할머니네 난간
백 개가 되기 전에 후다닥 사라지곤 하던 교내의 계단
불규칙한 높이로 근육을 잡아당기던 추락들과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며 계단을 만드는 모래알들
계단 위에서 폭포가 되고
폭포 속에서 계단을 찾는 사람
저린 두 다리를 안고 지나온 낙차를 생각한다 무턱대고 쌓아 온 것들과 한순간에 무너지던 일기장에 대해서. 새들의 손짓을 읽고 싶어졌다 날개에 숨긴 작고 높은 규칙의 계단들이 흰 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폭포의 포말처럼 쏟아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모든 날개에서 쏟아지는 작고 흰 계단들이었다
일주일은 신이 오르고 쌓고 부수는 계단, 다 오른 계단 끝에서 떨어지면서 꿈은 끝나고 그 주의 월요일이 시작되고.
끝장을 모르는 계단 어디에선가 끊어짐을 예비하며 또 다른 계단을 궁리하며
또는 흘러내림으로써 높아지는 모래알들처럼
나선형의 날갯짓처럼
굴러 떨어지는 수많은 꿈들과, 화들짝 깨어날 때 발바닥에 새겨진 작고 높은 규칙의 흰 자국들
<낮잠>
정말 졸려요 나에게 마법을 걸고 계신 당신, 당신이 앉아 있는 녹색 소파가 어쩐지 회색으로 보입니다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에요 누군가 계단을 만들어 두었나 봐요 조금씩 몸이 낮아집니다 파도가 된 것 같이 몸 안이 일렁입니다 우리 함께 잠드는 건가요? 공동의 낮잠 시간이라도 되었나요?
매일 밤마다 그 수많은 졸음이 찾아올 때는 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을까요? 낮아진다는 건 졸음과 비슷해서, 문틈 사이로 스며들 수 있을 것처럼 납작해지는 것인데, 흙으로 파도를 나르는 일인데, 내리쬐는 햇살로도 뚫을 수 없는 투명한 상자를 갖는 일인데.
당신 뒤에 문이 보여요 모든 새들은 천사의 시선을 뒤쫓습니다 이동하는 벌새의 시선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말입니다 천사들은 한없이 곤두박질치고 그럴수록 새들은 더 멀리 날아가요 각자의 새장을 껴입고 활공하는 새들 날개를 부수어 새장을 만든 새들 겨울이면 흩날리는 흰 빛들은 조각난 날개들입니다
나 역시 날개를 부수어 손톱 밑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꿈속으로는 손톱을 가져갈 수 없으니 빼내어 묻어 주세요 언 땅 위에서 그것은 군데군데 드러난 뼈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상공에서 바라보면 땅에 거꾸로 처박힌 날갯죽지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손톱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이라면 이해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 졸리네요
<포스트잇으로 쓰는 시>
낙엽을 갈퀴로 긁어 모아 시를 짓는 청소부가 있었다
밤 내내 흩날린 나무의 상념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기다렸다
내면의 벽에 포스트잇처럼 붙어 있던,
시가 되지 못한 문장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어머니는 딸의 포스트잇을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걸까
떼어낸 자국에 젖은 걸레를 문지를수록 까매지는 머릿속
노란 포스트잇이 하나둘씩 바람에 걸리며 떨어진다
포스트잇을 긁어 모으는 어머니의 발바닥이 노랗다
출가한 자식의 방에 들어가 산다
떼어 낸 흰 자국들이 한쪽 벽에 눈동자처럼 남아 있는 곳에
이제 낙엽을 모아 태울 거예요
끈끈한 뒷면은 잊어버리고 말이죠.
모닥불처럼
바람에게 그림자를 넘겨 줄 거예요,
나의 가을들은 어느 겨울보다도 추웠지만
어머니가 밥을 짓는다
더 이상 밥 위에 낙엽을 얹어 주지 마세요
태운 연기를 마시며 살 거예요
한줌 포스트잇을 달리는 트럭 위에서 날리고 싶었다
쓰레기이면서 동시에 노랗게 시든 잎사귀들의 총칭은 무엇입니까
총칭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각들이 흩날려야 합니까
조각나거나 손바닥만 한 것들
깨진 얼굴
전체가 되기까지 결말을 알 수 없는 모자이크들
슬픔은 포스트잇만큼이나 개별적이라서
모자이크, 낯선 땅의 성당에서 마주치는 예수의 얼굴은 볼 때마다 다르게 보였다
포스트잇 틈새로 반짝이는 햇빛에 대해서,
시속 80km로 달리는 과거로 달려가 달라붙는 낙엽들
빛을 반사하며 하얗게 빛나는 백지 위에 쌓인다
<빈집>
빈집으로 나 있는 길을 걷는 중입니다
여러 갈래에서 불어 오는 바람입니다
빈집은 버림받은 남자처럼 지쳐 보입니다
멀리서 볼 때와 다르게 상기된 두 볼로 바람이 들어갑니다
가까이서 보니 빈집은 빈집이 아닙니다
먼지가 빛과 만나 총명한 두 눈을 만들었습니다
상처들이 덮이고 덮여 열 개의 입이 되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집은
키스마크가 여러 개 찍힌 남자의 얼굴처럼 일그러져 보입니다
일그러짐은 행복의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때로 너무 행복하면 사물은 일그러져 보인다고 합니다,
중력의 왜곡처럼
창문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문은 너덜거립니다
오래된 코트는 그가 가장 애용하는 겉옷이리라 생각합니다
꾸덕한 연고 냄새를 풍기는 키스마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말이 흘러나옵니다
작게 속삭이는 노랫소리 같기도 합니다
덧난 상처에서 흐르는 신음 소리 같기도 합니다
빛과 먼지가 총총히 빛나는 집에서
나는 열 걸음 떨어져 바라봅니다
더 가까이 가면 나 역시 그 집에
키스마크를 남길 것 같습니다
나는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합니다
빛과 먼지로 세상을 보는 눈이 깜박입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습니다
멀리서 뒤돌아보면 그 집은 비어 보입니다
<당선 소감>
스무 살 무렵 한 프랑스 소설가가 제 삶에 문을 만들어 준 이후, 어느 길로 가야 그 문이 열리는지 알 수 없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고 그 최초의 문틈이 살짝 열린 것 같아서, 드문드문 내리는 비처럼 온종일 떨었습니다.
터질 듯한 열망과 열정으로 꿈을 좇는 제게, 지금 자신의 방에 앉아 시를 쓰고 있다면 그는 이미 시인이라는 격려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계속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걸어왔던 것과 똑같이 앞으로도 그 수많은 실패와 함께 걷겠습니다. 시를 향해 걷겠습니다. 더 깊이 걸어 들어가겠습니다. 더 멀리 걸어가고 싶습니다.
일요일 오후, 한강으로 이어지는 쭉 뻗은 천변을 따라 계속 걷고 싶지만 발길을 돌려야 하는 그 마음들을 생각하며 계속 쓸 것입니다. 우리들의 산책로에는 끝이 없습니다. 낮은 곳에서 끝없이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박정은의 크레바스에서는 절제된 감정을 인상적으로, 긴장과 이완의 국면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동시에 그 속에서 우리 삶의 비극적 일면이 웅숭깊게 구현되어 울림이 컸다. 2018년의 신인 박정은의 발견으로 우리 시단이 한층 풍요로워질 것을 의심치 않는다. 만족스러운 시 한 편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그에게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