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영 - 아코디언

사무엘럽 2021. 1. 14. 08:42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착하고 외롭게 산 사람들만 불러들여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착하고 외로운 사람의 것이었을까 빌라와 빌라 사이에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

 빌라와 빌라 사이를 벌리는

 

 외로운 노인이 흔해빠진 골목

 늘어난 러닝셔츠를 누렇게 적시면서

 

 곧 녹아내릴 눈사람을 생각하는 겨울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주물공을 생각하는 여름이 좋았다

 

 배꼽까지 빨간 아직은 예쁜 것

 풍선을 쥐고 지나가는 예쁘고 어린 것

 

 바람이 불었다 날아가는 붉은색 풍선을

 날아가게 두었다 쌓아올린 돌들이 와르륵 무너지면

 다시 공들일 것이다 바람일 뿐이므로

 움켜쥔 손가락을 하나하나 펼치는 것이

 바람의 일이므로

 

 멀리서 한 사람이 걷고 있다

 다가오는 것인지 멀어지는 것인지

 알 길도 없이 오래도록 제자리에서

 

 두 개의 허파가 천천히 부푸는 것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