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영 - 미래는 공처럼

사무엘럽 2021. 1. 13. 02:47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유계영 시집, 문학동네 온갖 것들의 낮:유계영 시집, 민음사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유계영 시집, 현대문학

 

 

 경쾌하고 즐거운 자, 그가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울고 있는 사람의 어깨를 두세 번 치고

 황급히 떠나는 자다

 벗어둔 재킷도 깜빡하고 간 그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진지하게 가라앉고 있다

 침대 아래 잠들어 있는 과거의 편선지들처럼

 

 그림자놀이에는 그림자 빼고 다 있지

 겨울의 풍경 속에서

 겨울이 아닌 것만 그리워하는 사람들처럼

 오늘의 그림자는 내일의 벽장 속에 잘 개어져 있으므로

 

 손목이라는 벼랑에 앉아 젖은 날개를 말리는

 캄캄한 메추라기

 

 미래를 쥐여주면 반드시 미래로 던져버리는

 오늘을 쪼고 있다

 

 울고 있는 눈사람에게 옥수수스프를 내어주는 여름의 진심

 죽음의 무더움을 함께 나누자는 것이겠지

 얼음에서 태어나 불구덩이 속으로

 주룩주룩 걸어가는

 

 경쾌하고 즐거운 자, 그는 미래를 공처럼 굴린다

 침대 밑에 처박혀 잊혀질 때까지

 

 미래는 잘 마른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다

 한때 코의 목적을 꿈꾸었던

 당근 꽁지만을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