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유계영 - 참 재미있었다
사무엘럽
2021. 1. 13. 00:37
동생을 찾아다녔다
겨울에 사라진 것이 분명하고 고무로 만든
한 칸에 일 년씩 살아버리는 느낌으로
육십여 개의 계단을 뽀득뽀득 걸어내려간
누군가 두고 간 표정이 종일 미끄럼틀 위로 흘러내렸다
혹시 모른다 흙투성이 얼굴들과 사이좋게
동생이 고여 있을지도
층계참에 쌓인 발자국들이
위를 향하거나 아래를 향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잠시 공중에서 놀고 있다
큰부리까마귀는 어린이의 귀를 물어다가
다 늙은 귀가 될 때까지 소리를 집어넣었다
밤의 레코드판 위를 두 발로 걸어
메가폰 밖으로 뚝뚝 떨어지는
한 음에 일 년씩 살아버리는 느낌으로 동생이,
조부모는 남자들이 먼저 죽었다
살아남은 할머니들은 고모와 이모와 나와 함께
동생을 찾아다녔다 매년 성실하게
겨울이 찾아오는 것에 비하면 동생은
매우 드물게 태어났지만
삑삑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태어난다는 사실 때문에
발바닥에 밟힌 고무공이 찌그러지며 발랄한 소리를 냈고
춥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만큼 흔한 것에 비하면
이불 속엔 내내 같은 덩치의 계절만 웅크리고 있었다
꿈속에서 사라진 동생만을 찾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