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혁 - 테트라포드

사무엘럽 2021. 1. 12. 02:46

 

아네모네, 봄날의책 6:성동혁 시집, 민음사

 

 

 쇠락하는 파도 바깥에서 네가 나오길 기다렸네

 겨울 바다로 뛰어든 네가 나오길 기다렸네

 참담한 행렬의 도입부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너를 기다렸네

 겨우 촛대를 잠재우는 입술은

 다행히 너까지 꺼뜨릴 순 없는 것이구나

 참담한 시민을 자청하고야 말았구나

 손도 등대도 아닌 성긴 도형이 있었네

 쌓을 때마다 바다와 가까워지고

 나와는 멀어지는 도형이었네

 무엇도 두렵지 않은 네가 두려웠네

 네가 우기를 뛰어넘을까봐 두려웠네

 겨울 바다로 뛰어드는 네가 두려웠네

 모래사장 바깥에서 네가 나오길 기다렸네

 홀로 비를 맞다가 이 가족사가 끝날까 봐

 가끔은 참담한 시민이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