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혁 - 속죄양

사무엘럽 2021. 1. 12. 02:43

 

아네모네, 봄날의책 6:성동혁 시집, 민음사

 

 

 팬티를 벗고 체중계에 올라가는 새벽입니다

 그림자도 체중계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새벽입니다

 커다란 제사장이여

 커다란 예언자여

 이번 삶은 천국 가는 길 겪는 긴 멀미인가요

 나를 체중계 위로 떠민 아비와

 체중계 뒤 발을 걸친 천사들 덕분에

 이곳은 지그시 가라앉고 있습니다

 커다란 제사장이여

 커다란 예언자여

 나는 이리도 우연히 죄와 평행해도 되는 것입니까

 주먹 속 일몰과

 망토 안에서 기우는 추와 함께

 체중계 위에서 저물면 안 되는 일입니까

 커다란 심판자여

 커다란 심판자여

 가볍게만 마시고 흩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