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혁 - 니겔라
뭐든지 울타리에 가둘 수 있는 목동을 알고 있다
별들이 재어 놓은 치수 안으로
남동풍과 연못 식욕
육중한 조상과 무성한 시인들을 가둘 수 있는 목동을 알고 있다
토르소나 광기
뿌리를 끊어 낸 천둥을 울타리 밖으로 흘려보내는
흘려보낼 수 없는 것들만 방생하려는 어린 목동을 알고 있다
울타리 사이로 삐져 나가는 안개를 모른 척하는 운반자를 알고 있다
귀뚜라미가 득실거리는 창고나
무심코 변하는 구름 앞에서
바다를 되밟는
고독과 습관으로 사는 꽃 앞에선
달처럼 쪼그라드는 작은 성기를 가진 목동을 알고 있다
석양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도 떠받는 분명한 거미줄
후퇴하는 암묵적 언덕
야만적 찬양과 여름
폭력적 자서전 그러니까 스스로 쓰지 않은 자서전
메마르고 민첩한 곡식
교활한 숭배자들이 떨구는
가끔은 우박이라 불리는 씨앗
호숫가 주변으로 몰려다니는 전염병
희끄무레한 호기심과 위대한 포도당
목적은 세심하고 결과는 엉뚱한 기도
횃대 위 붉은 손가락
예외 없는 기슭
다시 음악적 내리막길 구르며 찬송가를 부르는 숭배자들
격렬한 현관문과 침대를 감싸는 값싼 리넨
아기 여우 숲으로 들이는 또 다른 포유동물
잘못 번역된 괄호 안 둥근 글자
사랑이라 부르기도 하는
고조되는 둥그런 숲 앞에서
놀라운 마당을 상상하는 목동을 알고 있다
톱을 자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톱이 목동을 가를 것이다
맨살로는 톱을 자를 수 없다
여린 것들의 분노는 슬픔과 같은 말
망치가 물러지고 사슬을 젖게 하는 일을
어찌 어린 목동 홀로 하였을까
골몰하는 애인이여
나는 스스로를 목동이라 부르고 있다
가두고
사랑하고 있다
율법처럼 울타리를 펼치고 모든 슬픔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몰고 있다
불안해하는 사물들을 껴안는 일뿐이면서도
울타리 밖의 것들을 또렷하게 증오하면서도
스스로를 목동이라 부르고 있다 자격 없음에도
어린 목동이라 부르고 있다 무례하게 고꾸라지면서도
스스로를 어린 목동이라 부르고 있다 여전히
별이 거꾸로인 밤들은 모두 목동의 것들이다 니겔라
당신의 화병은 왜 이리 큰 울타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