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 토끼가 살지 않는 숲

사무엘럽 2021. 1. 11. 03:44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창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집, 창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시집, 현대문학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서랍의날씨

 

 

 큰 나무와 밧줄이 있는 곳까지 왔다

 

 나는 빵 조각을 흘리며 걷지만

 아무도 나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고

 

 한 사람을 죽이겠다는 생각만으로 숲은 무성해지고 있다

 발톱이 굵은 새들이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바닥이 찢어지는 구름들, 걸어들어간 흔적은 있지만 돌아나온 발자국은 없는

 

 내가 숲의 한가운데에서 투명한 자물쇠를 떠올리는 동안

 그림자는 서서히 일어나 잰걸음으로 달아났다

 

 나는 당신의 생각 속에서 죽은 사람

 타다 남은 몸으로 숲을 떠돌아요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쪽을 빤히 쳐다보던 것이 있는데 눈이 마주쳤을 때

 풀숲으로 재빨리 사라져버린 것이 있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새빨간 눈에 대한 상상을 멈출 수 없었다

 

 열마리 스무마리 백마리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난 토끼들이

 

 나는 큰 나무와 밧줄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뒤면 매달려 있을 사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