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 선고

사무엘럽 2021. 1. 11. 00:27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 안희연 시집, 창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시집, 창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안희연 시집, 현대문학 흩어지는 마음에게 안녕, 서랍의날씨

 

 

 너는 잠에서 나오지 않는다

 

 나는 너의 감긴 눈꺼풀을 열고

 눈보라 치는 설원을 바라본다

 

 모든 악몽 위에 세워진

 고요의 땅

 

 그곳으로

 너를 찾으러 간다

 

 한방울 그리고 한방울

 핏방울을 떨어뜨리며

 

 펄떡이는 심장을 들고

 너를 찾아 한참을 헤맨다

 

 이토록 추운 잠 속에서

 너는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간혹 바람만이 얼굴을 헤집고 돌아갈 뿐

 어디에도 너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점점 희박해지는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끌어안으려다

 목을 조르며 죽어간 두 그루

 나무를 떠올리고

 

 먼지로 뒤덮인 피아노 덮개를 열듯

 하나하나

 용서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