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안희연 - 화산섬
사무엘럽
2021. 1. 11. 00:18
눈앞의 모든 나무를 베어버리고
땅을 판다
진짜 나무를 심을 것이다
너도 봤어? 매달린 얼굴 앞에 서 있던 것
두 눈을 촛불처럼 불어 끄고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간 것
발버둥 치던 신발을 입에 문
저 개는 뚫어져라 나를 본다
누가 자꾸 휘파람을 부는 걸까
나도 봤어, 나무가 한 사람을 발끝까지 후루룩 삼키는 거
나는 위악 없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저 개의 눈도 기도로 가득 차 있다
온 나무에 불을 지르고 돌아서는
오늘은 나의 생일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찢긴 종이를 이어 붙여 공중을 떠도는 목소리를 들을 때
이제 나는 목이 부러지는 높이를 아는 사람
여름은 충분히 들여다보아야 할 여름이 되고
이 손은 씻길 수 없는 손이 된다
잠에서 깨어나면 새 나무를 갖게 될 거야
그 나무에선 아무도 울지 않는 시간이 열릴 거야
무릎을 꿇고서
나는 온 힘을 다해 고요한 어항을 떠올렸지만 어항 뒤로
피투성이 얼굴이 겹쳐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