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 모호한 지구

사무엘럽 2021. 1. 10.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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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하나 거기 들어가 있다

 많이 구부리다 찌그러진 줄도 모르고

 지구는 둥글다

 뾰족한 데마다 다치는 동물들의 피냄새

 총알이 자꾸 날아오는 지구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자전

 나갈 힘이 없는 저 파랑의 안쪽 그곳을 지구라고 부른 적 없는데

 지구는 꽃시계처럼 둥글다

 초침과 분침이 내 팔목에다 커다랗게 원을 그려주며

 뾰족뾰족하게 우거진 슬픔도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지구는 둥글다

 외로운 사람 더욱 외롭게 끌어당기는 깃털만한 만유인력

 뉴턴은 내가 심은 해바라기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것을 둥글다고 부를까

 또 지구는 목이 메는구나

 어린 새들인가 죽은 꽃잎인가

 무더기 무더기 지친 버스를 타고 나가는 저 이탈자들

 무엇이라 부를까

 남아 있는 아무 손이나 붙잡고

 지구는 둥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