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온윤 -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2019 문화일보 신춘문예)

사무엘럽 2020. 11. 11. 04:19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할머니가 있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가판대 위 물고기의 눈알처럼

 죽어가면서도 시선을 잃지 않아서

 그 아득한 세월의 흔들의자에 앉아 여전히

 이승의 장경을 관망하고 있는

 

 아무르 강가에서 늙고 지친 호랑이가

 밀렵꾼들에게 가족을 잃은 마지막 호랑이가

 수면 위로 얼굴을 비추는 순간

 마르고 거친 혓바닥을 내밀어 적시는 순간

 늙은 호랑이는 마주하게 되지

 마지막 할머니를

 

 초원 위를 뛰어가는 사슴들을 멀리서

 그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는 위구르족 여자의 시선을

 그 시선의 수심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어서

 심해어의 눈처럼

 어딘가에 있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언가 보고 있겠지만 무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초점이 없어도 자전하는 지구본처럼

 

 물고기의 눈알이 빨간 국물에 적셔졌다면, 지금쯤 식탁 위에서

 눈알을 도려냈다면 어두컴컴한 하수구 어디쯤에서

 삼켰다면 고래의 뱃속에서

 여전히 관망하지

 세계를

 그곳의 공감각을

 

 머지않아 모든 할머니들이 사라진 시대가 온다고 해도

 목을 축이러 찾아간 아무르 강가에서

 저 멀리 초원 위를 뛰어다니는 사슴들밖엔 바라볼 수 없다고 해도

 

 호랑이는 그 눈을 죽는 순간까지 기억하지

 죽은 뒤에도 시선을 잃지 않아서

 흔들의자는 혼자서도 오랫동안 흔들거리지 

 

 

 

 <묵시>

 

 내가

 창가에 앉아있는 날씨의 하얀 털을

 한 손으로만 쓰다듬는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다시

 다섯 개의 손톱을 똑같은 모양으로 자르고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밥 먹는 법을 배운 건 오른쪽이 전부였으나

 밥을 먹는 동안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있는 왼손에게도

 식전의 기도는 중요합니다

 

 사교적인 사람들의 점심식사에 둘러앉아

 뙤약볕 같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침묵의 몫입니다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

 

 밥을 먹다가

 왜 그렇게 말이 없냐는 말로

 말을 걸어오면

 말이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다

 말이 없어집니다

 

 다섯 개의 손톱이 웃는 모양이라서

 다섯 개의 손톱도 웃는 모양이라서

 나는 그저 가지런히 열을 세며 있고 싶습니다

 

 말을 아끼기에는

 나는 말이 너무 없어서

 사랑받는 말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햇볕이 한 줌 엎질러 있어

 나는 커튼을 쳐서 닦아내려다

 두 손을 컵처럼 만들어 햇볕을 담아봅니다

 

 이건 사랑받는 말일까요 

 하지만 투명한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따스해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침묵을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곁에 찾아와

 조용히 앉아만 있다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가 나의 왼손입니다

 

 

 

 <토르소>

 

 이곳에 나를 그려넣다가

 도중에 사라진 사람이 있다

 

 어떤 일을 끝내는 것보다

 시작하는 일이 좋아서

 더는 못하겠어 하고 간단히 털어낸 뒤

 새로운 취미를 찾아 떠나갔다

 취미를 시작하는 게 취미일 수도 있겠지

 

 사람들의 발목과 발목 사이를

 숲이라 믿는 비둘기들

 이름을 지운 채 전봇대 아래 쌓여 있는 책들과

 꼬리가 없는

 꼬리를 모르는 고양이

 담벼락 위에 멀뚱히 걸터앉아 기다리는 취미들이 많다

 

 그렇게 세상에 버려진 실패작들을 모아

 작은 전시회를 연다면

 관람객들은 웃을까

 비웃을까

 팔다리를 깜빡한 조각상의 

 없는 팔다리를 떠올려줄까

 

 그러나 공중에서 돋아나

 당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손

 있을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얼굴을 쥔 채로

 

 나를 그리다 말고 사라진 사람이

 또한 당신을 그리다 말고 사라진 걸 알았을 때

 찢어진 페이지 속에서 깨어나

 발목이 되어 건너오는 나의 비문들

 

 나는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에 구원을 버리고 가는 천사는 없으므로

 

 버려진 것들은 더는 버리지 못하므로

 없는 손 하나가 모르는 손을 그리며

 공백을 더듬는다

 

 

 

 <끝과 끝>

 

 복도의 끝이

 복도의 시작을 닮아있었어

 

 복도를 전부 걸은 뒤에야 알았어

 들어온 문이 나가는 문이었던 미로처럼

 

 시작과 끝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는지

 나는 그게 희한해서

 처음으로 돌아가 물어보고 싶었어

 

 처음은 처음답게 거기 있을 줄 알았어

 토마토와 일요일

 오디오와 기러기처럼

 거꾸로 읽어도 상관없던 이름들처럼

 

 빗속에서 잃어버린 등장인물을

 읽던 책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

 처음부터 찾는 것처럼

 사실 내가 찾는 인물은 이야기의 처음에도

 끝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두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저주를 풀었기에

 한 몸이 되어 죽었다는 남녀추니의 이야기는?

 그건 다른 책이었지

 

 비를 맞으며 사라지던 사람은 책이 아니라

 창밖에서 읽은 장면이라는 것도

 

 이제는 어디가 끝이고 시작인지 잘 모르겠어

 새로운 책을 읽어도 나는 똑같은 나고

 슬픔은 슬픔이고

 거꾸로 읽으면 이상한 이야기가 돼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반복한 뒤에야 알았어

 어떤 이야기는 한 방향으로만 읽어야 했어

 

 고양이와 장우산

 뒷모습과 월요일

 돌아보면 없는 말이 되는 이름들처럼

 사라지고 없는 처음을 향해 걸었어

 

 거기가 나가는 문이라는 걸 알아

 

 복도의 시작이 복도의 끝을

 닮아있었어

 

 

 

 <컴컴한 극장에 내가 앉아있는 꿈>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앞사람 때문에

 앞사람은 앉은키가 크고

 무심한 뒤통수가 내가 아는 사람을

 닮은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모습이 쓸쓸해지고 있다는 걸

 앞은 모른다

 

 어깨를 두드려서 뒤를 돌아보게 하고 싶다

 웃으면서 고개를 조금 비켜줄지도 몰라

 아직 펼치지 않은 시간의 뒷면으로도 빛이 스밀지 몰라

 맑은 눈으로 어둠에 파묻힌 검은 활자를 씻어줄지도

 내가 아는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앉아있는 게 세상에서 가장 긴 의자라면

 우리에겐 더 이상 컴컴한 배후가 없고

 모든 건 명확해질까

 나란히 앉아 좌우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다정해질 수 있을까 

 

 그건 너무 순해빠진 생각일까

 세상에는 뒷모습을 닮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기억해낸다

 정면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누가 나를 미워하는지...

 조바심에 손톱을 물어뜯으면서도

 다시 원래대로 자랄 거라 믿는

 낙천적인 버릇도 고쳐야 한다고

 

 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앉아 있는 게 세상에 하나뿐인 기다란 의자이고

 이곳이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극장이라면

 우리는 옆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의자의 끝에서 끝으로 전달되는 쪽지를

 함께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

 

 누가 이야길랑 잊은 채 노곤한 잠 속에 빠져있는지 

 누가 이야기에 속아 넘어가 눈물을 흘리고

 가장 맑은 눈을 하고 있는지

 

 

 

 <설인>

 

 깨어보니 베란다 바깥은 온통 하얀 안개였다

 십일 층에 산다는 건 허공의 기분을 이해하기에 적절하고 이곳은,

 이 집은 마치 고립된 섬 같구나

 동생들은 아직 침대 위에 몸이 이불처럼 엉켜 잠들어있고

 나는 식구들이 조난되었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

 섬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배경은

 무중력 속에 쌓여있는 폭설 같아서

 나는 안개를 잡아보려 손을 길게 뻗다가

 온혈동물의 습성처럼 유리창 위에 손자국만을 남긴다

 따뜻한 것들은 식으면서 사라진다

 

 자꾸만 유리창으로 날아들어 머리를 박는 눈을 보며

 어떤 때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선명할 때가 있다고

 당신이 말했었지

 이제 당신은 안개 속에 길을 잃고 산다는 설인, 설인이 되었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다가오고 있는지

 내게서 멀어지려 하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나는 매번 투명한 감정들에게 머릴 얻어맞거나 발이 걸려 넘어졌다

 넘어진 채 고개를 들면 당신의 하반신이 보였는데

 당신은 선명하지 못한 사람 

 손목을 손잡이처럼 잡고 일어서려 해도 쥐는 순간 흩어지는 사람

 화가 나서 큰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후- 부르면

 가슴에 도넛 같은 구멍이 생기곤 했다

 

 하얘서

 그 동그라미가 너무 하얘서

 당신이 깜빡 천국의 마음을 들고 온 거라 생각했다

 

 지금 안고 가려는 게 정말 지상의 것이 아니라면

 그게 진짜라면 저도 데려가주시겠어요?

 나는 더 이상 이곳의 감정일랑 지겨워서

 이곳이 아닌 당신에게 애원을 했지

 당신은 끄덕이며 내게 당부한다

 참새처럼 자고 있는

 동생들은 모르게 하렴

 

 신을 신고

 문을 열고

 당신의 손을 잡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끝까지 견뎌보고자 했던 마음이 식어

 사라진 뒤에야

 설인의 손을 만질 수 있구나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쫓아온다 해도

 차가워진 손등을 눈사람처럼 안고

 걸어가야겠구나

 

 이제 나는 안개 속에 길을 잃고 산다는 하얀 괴물

 설인, 설인이 되었네

 

 

 

 <당선 소감>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생각하며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혼자서 망양 한가운데를 표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를 쓰는 일이 혼자서만 보는 새를 기르는 것처럼 무력하고 무용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새를 놓아주어야 할까. 새는 내 안에 갇혀 병들고 있는 걸까.

 불안하고 슬펐다. 새를 풀어주어도 새가 나를 떠나지 않길 바랐다. 물을 그리워하며 비둘기를 날려 보냈던 방주 위의 노아처럼, 실은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곳이 있길 바라며 먼 곳으로 흰 종이를 부치고 또 부쳤던 거 같다.

 입에 가지를 물고 돌아온 하얀 새를 본 것만 같다.

 그간 나의 방주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생각해보니 내가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운 것은 글을 어떻게 쓰는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는 질문이었던 거 같다. 선생님들도, 친구들도, 닮고 싶은 사람이 많다. 내가 받았던 위안처럼, 나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알약 같은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심사평>

 

 숙고와 논의를 거쳐 죽기 직전에 할머니가 바라본 풍경과 할머니의 죽음을 기억하는 호랑이의 시선을 스케일이 큰 상상력으로 진술한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는 지상의 수많은 삶과 죽음을 자신의 몸으로 겪어낸 것 같은 할머니가 자신의 마지막을 풍경화처럼 바라보는 시선과 개개의 삶을 넘어 생태계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움직이는 호랑이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다. 서로 얽히면서 소멸되어가는 두 시선은 자연의 냉혹한 질서와 죽음의 공포, 삶의 애착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어떤 거대한 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우리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소재와 한 편의 시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큰 주제로 인해 관념에 떨어질 위험이 있으나 세밀하고 끈질긴 상상과 삶과 죽음의 순환을 꿰뚫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통찰이 그런 우려를 잘 떨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