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준 - 종언

사무엘럽 2021. 1. 9. 01:01

 

아름다운 그런데:한인준 시집, 창비

 

 

 나는 은행나무 속으로 들어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운다의 속으로 들어가버린 당신을

 가루약과 알약 사이에서 회복되는 조금씩을

 

 볼수록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미안하다는 말들은 내가 나에게 했던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사는 이 은행나무 속에서는 기침과 하품이 닮아 있어서

 내보내는 일들이 다 닮아 있어서

 

 나뭇잎이다는 결국과 바스라지고 마는 것

 

 당신이 없는 은행나무 속으로 나는 들어가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사는 이 은행나무 속에서는

 

 졸리자

 피곤해지자

 아프자

 이런 말도 할 수도 있어서 다시 나가고 싶을 수도 있지만

 

 살자 살아서

 

 갈대와 억새를 처음으로 구별해보았던 기억이나 그믐달과 초승달을 처음으로 달리 알아보았던 기억을 그저 떠올리는 것이다

 

 알려주던 것임을

 

 우리가 서로에게 알려주던 것들을 나는 조용하게 떠올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