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 파로키
내게는 파로키가 있어
혼자여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파로키가 있는 동안에 사람들은
내게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는 파로키와 살면서
평화가 무엇인지
공포가 무엇인지
그럴 때 어떻게 상대를 응시하는지
어떻게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하는지
어미를 보고 따르는 새끼처럼
하나씩 배워 나갔다.
파로키가 늙고 병이 들어
내 손으로 파로키를 땅에 묻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나를 죽이러 올 것이다.
나는 파로키와 함께 살고
나는 파로키와 함께 죽고
푸른 눈 파로키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의 살고 죽는 것을 보았다.
그로부터 나는 파로키와 함께
숲으로 들어가
파로키가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하루 한 번
그렇게 좋기만 한 시간이
둘이서 사랑하는 저녁이 올 때
소리 없이 숲을 걷고
때때로 가여운 짐승을 발견하고
파로키가 고개를 젓거나
파로키가 고개를 끄덕이면
나는 파로키의 목줄을 놓고
파로키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사람이 없는 삶
사람은 사람끼리 모여
파로키를 죽여야 한다고
입을 모아 선동하는 삶
나는 파로키와 사는 것이
사람과 함께일 때보다 좋았다.
파로키가 없으면
저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파로키가 아니면
저 여자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작정하고 몰려와 나를 둘러쌀 때
푸른 눈 파로키는 그들이 살고 죽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없애려 하고
나는 파로키의 목줄을 놓고
파로키가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여기에 파로키를 본 사람이 있는지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아는 파로키에 대해 말한다.
첫째, 파로키는 우리와 다르고
둘째, 파로키는 위험하다
셋째, 파로키는 불안의 근원이며
넷째, 파로키는 분열의 씨앗이다
그사이 파로키는 소리 없이 사람들 사이를 걸어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