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박시하 - 카사 로사
사무엘럽
2021. 1. 3. 15:30
사물은 언젠가 자기를 다 비운다.
빈 로션 통을 흔든다.
써버린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나를 반쯤 비웠다.
지나간 나는
장밋빛 꿈을 얼굴에 바른다.
잊은 거리를 걷고 있지.
뒤도 안 돌아보고 뒤로 가고 있지.
누군가 살던 집에 비우지 못한 말들이 산다.
숲은 어떻게 자기를 비우면서 채워지나요.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으며
나무의 끝을 올려다본다.
더는 할말이 없는 로션 통이 가득 비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