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송승환 - 욕조
사무엘럽
2020. 12. 31. 09:40
1
내가 욕조 속으로 누울 때
욕실 주위로 검은 옷들이 흩어져 끌려나온다
내가 바라보지 않을 때
어머니는 드러나지 않고 나타난다
달
핏물이 번져간다
2
불 위의 눈송이
겨울 달빛이 흘려보내는 흐릿한 숨결의 리듬으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춤추는 물결의 얼룩으로
파도 속에서 떨리는 바다의 물살을 잡고 있다
어머니
어떤 기나긴 푸른 불빛 속 저 먼 곳에서 얼굴 없이 흔들린다
어머니
바란다면 바라본다면 바라다본다면 바랜다면 바른다면 바로잡는다면 바르집는다면 바순다면 바친다면
나는
나는 맨발로 욕조 바닥을 딛는다
욕조
빨려들어가는 물소리에 내맡겨진 욕조
속에 나는 가라앉는다 뭍이 멀어진다 또다른 뭍이 다가온다 섬과 섬을 휘감고 돌아나가는 푸르고 검은 바다 바닥에 부딪힌다 구멍을 치고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부서지는 포말 속에 손가락을 담근다 욕조는 방향을 바꾼다 나는 어디에 있다 잊는다
달의 창공은 왜 푸르고 희고 검은가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물 안에 있다
나는 감각한다
나는 감각하지 않는다
3
사무실 집 거리 병원
나는 손잡이를 잡고 깨어난다
욕조가 있다
병원 거리 집 사무실
어머니는 어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