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 - 책

사무엘럽 2020. 12. 31. 09:26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송승환 시집, 문학동네 전체의 바깥:송승환 비평집, 문학들 이노플리아 드라이 아이스 송승환 시집, One color | One Size@1 문학과지성사 클로로포름 -문학과지성 시인선 402 측위의 감각, 서정시학

 

 

 1

 

 나는 읽는다

 

 

 2

 

 어머니

 없다

 

 흰 리본

 검은 정장

 

 액자 한복 소매 고름 동정 진동 끝동 배래 섶 길 깃 저고리 치마 폭 단 화병 꽃 반지 신발

 없다

 

 흰 종이

 

 검은 잉크

 

 나는 읽는다

 

 

 3

 

 자정

 그리고 어머니가 나타난다

 

 어머니 흰 종이 위로 걷는다

 검은 잉크 발자국 찍힌다

 

 어머니 페이지를 넘긴다

 흰 종이에 번지는 검은 잉크

 

 나는 어머니 따라 걷는다

 

 나는 불 꺼진 연립 빌라 창문 따라 걷는다

 

 나는 어머니 중얼거림 따라 걷는다

 

 나는 공원 라일락 향기 따라 걷는다

 

 나는 어머니 흩날리는 머리결 따라 걷는다

 

 나는 크레인 옆으로 걷는다

 

 나는 어머니 몸속 물길 따라 걷는다

 

 나는 철거 예정 건물 벽들 따라 걷는다

 

 나는 거리의 촛불 바라보며 걷는다

 

 나는 어머니 거친 숨결 따라 걷는다

 

 나는 막차 끊긴 지하철역 앞을 걷는다

 

 나는 환한 불빛 상점 대로를 걷는다

 

 나는 어머니 그림자 밟으며 걷는다

 

 나는 골목으로 사라지는 연인 뒤를 걷는다

 

 나는 신생아실 복도를 걷는다

 

 나는 장례식장 복도를 걷는다

 

 나는 어머니 목소리 기다리며 걷는다

 

 나는 묘지 침묵 사이로 걷는다

 

 나는 묘비명 읽으며 걷는다

 

 나는 돌이 가득한 밤을 걷는다

 

 나는 어머니 몸속을 통과하는 별빛을 보고 걷는다

 

 나는 서리 내린 빈 들판을 걷는다

 

 나는 별들이 사라진 하늘을 걷는다

 

 나는 열린 하늘 향해 눈을 감고 걷는다

 

 마침내 나는 멈춘다

 

 나는 눈꺼풀 뒤편에서 동공 안으로 열리는 문 앞에 마주선다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읽을 것인가

 

 

 4

 

 밤

 태양은 멀고 달은 가깝다

 

 흰 태양

 검은 달

 

 무리

 

 자정의 물방울

 빛을 반사한다

 

 둥근 테

 그리고 비가 내린다

 

 밤이 얼룩진다

 책

 

 

 5

 

 나는 읽는다

 

 어머니가 있다

 

 나는 어머니 얼굴을 모른다

 

 어머니가 없다

 

 나는 읽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