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근 - 너는 자전거를 탄다
사무엘럽
2020. 12. 30. 08:05
너는 자전거를 탄다 네가 자전거를 타는 동안 꽃들이 흐드러진다 꽃 핀 풍경이 바퀴에 감겨든다 바퀴 안에서 색깔들이 뒤섞인다 바퀴에 빨려든 색깔들이 포크를 지나 핸들을 지나 팔을 지나 네 머릿속으로 빨려든다 머릿속이 빙빙 돈다 햇살이 팔목을 긋는다 이상하다 피가 솟아오르지 않는다 페달의 관절이 삐걱일 때마다 네 다리의 관절도 삐걱인다 너는 자전거와 한 몸이 된다 자전거에서 내릴 수 없다 너는 웃는다 웃음이 빙빙 돈다
너는 자전거를 탄다 억척스럽게 꽃잎들이 네게 달라붙는다 꽃잎들과 함께 시간이 자꾸 네 눈을 가린다 꽃이 지는 것으로 시간이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갸우뚱거리자 자전거 바퀴 아래 고양이들의 내장이 터진다 벌써 여러 마리째 납작해진 몸을 일으켜 고양이들은 흩날리는 꽃그늘로 간다 기어를 바꾼다 꽃잎 속에서 고양이들 납작해진 시간을 펴고 있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들은 모두 네가 버린 애인들이다
너는 자전거를 탄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떨어지는 꽃잎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 네가 중얼거리자 재빨리 물먹은 시체처럼 어머니가 네 등에 매달린다 뼈다귀만 남은 아버지가 네 목에서 덜그럭거린다 페달을 구르는 다리 하나씩 잡고 동생들이 아스팔트 위를 질질 끌려온다 자전거가 네 균형에서 벗어난다 자전거가 너를 버린다 너는 안장에서 굴러떨어진다 자전거의 바퀴살이 네 머리칼을 감아올린다 너는 웃는다 웃음이 빙빙 돈다 너는 자전거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