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근 - 죽은 나무
사무엘럽
2020. 12. 30. 05:24
할미는 알약을 세어본다 문풍지 바깥으로 눈보라 거세고 방 안엔 동그란 햇빛 햇빛을 핥아먹고 하얀 알약들 무장무장 늘어가고 할미는 오늘이 어제인지 알지 못한다 짓무른 눈 속으로 나비 한 마리 날아가고 할미는 알약을 한 움큼 삼킨다 줄지 않는 알약들 할미는 봄처럼 노곤해지고 아지랑이 아지랑이 방 안의 모든 모서리들이 일그러지고 문득, 할미는 물기 없는 제 가랭이가 가렵다 스멀스멀 가랭이 사이로 기어나오는 하얀 벌레들 벌레들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약을 먹고 내가 버러지를 낳았나 버러지가 나비가 되나 흐흐흐흐 이도 없는 입으로 할미가 한 번 웃자 일제히 구겨지는 천 개 주름살 헐거운 제 가랭이를 할미는 들여다본다 에휴 몇 밤만 자고 나면 가랭이 사이로 자식들이 멀쩡하게 걸어나왔니라 눈보라 그치고 할미의 몸뚱이가 자꾸 동그랗게 말린다 말려서 할미는 제 가랭이 열고 아주 들어가버린다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
눈 뜨자마자 할미는 알약을 세어본다
우두커니 서 있는 죽은 나무 한 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