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원하 - 물잔에 고인 물
사무엘럽
2020. 12. 26. 03:34
보일 듯 말 듯한 물을 마셨어요
이 느낌이 그 느낌이 맞는다면
나는 바랄 것이 없을까요
젖은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네요
뭐라도 던져서 반응을 보고 싶은데
내가 가진 건 말뿐이네요
하고 싶은 말을
허공에 수차례 던져도
아무도 손대지 않네요
비는 왜
섬에 오지 않을까요
뜬구름이 나를 그늘진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는데도 왜 오지 않을까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마지못해
비가 내리면
그땐 우산으로 나를 가릴 거예요
우산 아래서는
그를 만난 표정을 지어도,
어떤 고백을 해도, 물건을 훔쳐도,
숨어 있어도, 눈에 띌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