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원하 - 입에 담지 못한 손은 꿈에나 담아야 해요
사무엘럽
2020. 12. 25. 19:01
나요
오랜 미련에 색이 남아 있다면
손바닥으로 전부 문지를 거예요
왜냐하면요
그 미련들은 현재의 나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문지르다가 손에 색이 옮겨붙으면
새끼손가락만 빼고 다 버릴 거예요
약속은
현재에서도 살아야 되니까요
꿈자리처럼 지켜야 하니까요
달아나려는 밤을 붙잡았더니
가로등이 할 일을 시작합니다
가로등이 만든 길을 흰 눈이 걸어갑니다
걸음걸이가 내게 속삭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봅니다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바람이 먼저 들었는지 아무 소리도
없습니다
한눈팔지 않았는데, 없습니다
난 괜찮을 겁니다
공백은 언제고 밉지 않으니까요
공백은 언제고 색이 없느라 빛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