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회쟁론] 중관자에 대한 실재론자의 반론

사무엘럽 2020. 12. 15. 01:54

 

 

 (중관자가 말하듯이) 만일 어느 곳에도 어떤 것에도 본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대의 말도 본체를 갖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본체를 부정할 수도 없다......

 

 (중관자는 말한다)

 "어느 것의 본체이든 그것은 어느 곳에도 - 그 질료인 속에도, 보조인 속에도, 질료인과 보조인을 합친 전체 속에도, 혹은 그것들과 독립된 것이라도 -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 그 까닭인즉 예를 들면, 싹은 그 질료인인 종자 속에는 있지 않다. 그 보조인으로 불리는 지 수 화 풍 같은 것의 하나하나 속에도, 그 보조인의 전체 속에도, 질료인과 보조인과를 합친 전체 속에도 싹은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질료인과 보조인 없이 독립해서 싹이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들 어느 것 속에도 본체는 없는 것이므로, 싹은 본체를 갖지 않는 것이다. 본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공이다. 이 싹이 본체를 안 가지며, 본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공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고 본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공이라 말한다."

 이에 대해 우리 실재론자는 다음과 같이 논하겠다.

 이같은 경우네는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그대의 말도 또 공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 말도 질료인인 모든 원소의 하나하나 속에도, 그것들의 집합 속에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조인인 가슴통 목구멍 입술 혀 이뿌리 뒤입천장 코 앞입천장 같은 것 속에도, 또 말을 하려고 하는 사람의 생각 속에도 없다. 두 인을 합친 전체 속에도 없고, 질료인과 보조인과를 떠나 독립해서도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본체를 갖지 않고, 본체가 없기 때문에 공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것에 의해 만물의 본체가 부정되는 일은 없다.

 실제로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 불에 의해 타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는 칼에 의해 끊어지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물에 의해 적셔질 수도 없다. 이같이 존재하지 않는 말에 의해 모든 것의 본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가, 모든 것의 본래는 부정된다고 말하는 것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만일 이 말이 본체를 가지는 것이라면, 그대가 앞에 주장한 것은 깨어진다.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어, 그것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런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그대가 생각하고, 이 말이 본체를 가지며 본체를 가지기 때문에 공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의해 모든 것의 본체는 부정된다라고 말한다면, 그에 대해 우리는 대답하겠다. 만일 그렇다면 앞서 주장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한 명제는 잘못되어 있다.

 다시 계속한다면 그대의 말도 모든 것의 한 부분이다.

 모든 것이 공일 때에 어떻게 그대의 말만이 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리하여 여섯 가지 한계를 가진 그릇된 의론이 되고 만다. 그것은 어떤 형태에서냐 하면, 자아 보게.

 만일 모든 것이 공이라면, 당연히 그대의 말도 모든 것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공이다. 그 공인 것에 의해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부정도 있을 수 없다.

 만일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부정이 있을 수 있다면, 그대의 말은 공이 아니어야 한다. 공이 아닌 것이므로, 그것에 의해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또 모든 것은 공이지만, 그대의 말은 공이 아니므로 부정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대의 말은 모든 것 속에 포함되지 않게 된다. 그 경우에는 모든 것은 공이다라는 주장은 실례와 서로 어긋나고 만다.

 그대의 말이 모든 것의 한 부분이고, 또 모든 것이 공이라면 그도 공일 것이다. 공이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부정할 수는 없다.

 또 공이요, 그리고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부정이 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모든 것은 공이면서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승인될 수 없다.

 실례와 자신의 의론이 서로 어긋나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모든 것은 공이며, 또 작용을 행하지 않는다고 그대가 말한다면, 공인 그대의 말에 의해 모든 것의 본체를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또 이같이 그 존재함으로써 어느 것은 공이고, 어느 것은 공이 아니라고 하는 불일치가 따르게 된다. 따라서 그 불일치성에 대해 어느 것은 공이고, 어느 것은 공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특별한 이유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그대가 말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또, ......하지 마라 하는 소리가, 위에 말한 불일치의 해결을 예를 들어 증명할 수 있다고 그대는 생각하지만, 그것도 타당치 않다. 그 까닭은 그 경우에는 실재하는 소리에 의해, 생겨나게 될 소리의 금지가 행해지기 때문에. ............

 

 예를 들면 누군가가 소리를 내지 마라라고 말했을 때에, 스스로 소리를 내고 그러고도 그 소리에 의해 같은 소리가 제지되리라. 바로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공인 말에 의해, 모든 것의 본체가 억제되는 것이라고 그대는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그것도 타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앞의 경우에는 실재하는 소리에 의해 생겨나게 될 소리가 부정되고 있지만 뒤의 경우에는, 그대에 있어서 실재하고 있는 말에 의해, 모든 것의 본체가 부정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생각으로는 말도 또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의 본체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지 마라라는 소리처럼, 이라는 비유는 그 적용이 잘못되고 있다.

 

 중관자에 의한 본체의 부정에 의한 우리들의 부정도 마찬가지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이처럼 형식에 있어서 성립되지 않는 것은 그대의 주장이지 우리의 주장은 아니다. ......

 

 부정의 부정도 꼭 마찬가지로 타당치 않다. 즉 모든 것의 본체를 부정하는 중관자의 말을 또 그대가 부정하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하고 그대는 생각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말하리라. 그것도 옳지 못하다. 어째서냐 하면 그것은 그대에게 있어서 주장명제로서의 형식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 내게 있어서는 아니다.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였고 내가 아니며, 최초의 견해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우에는 부정의 부정도 타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설령 그대가 먼저 지각에 의해 사물을 인식하고 나서 그 본체를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인 그 지각은 그대에게 있어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대가 지각에 의해 모든 것을 인식한 다음,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해 부정하더라도 그것은 타당치 않다. 어째서냐 하면, 지각이라는 인식 방법도 모든 것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공이며, 사물을 인식하는 사람도 또 공이다. 그러므로 지각이라는 인식 방법에 의한 인식이란 것은 없다. 또 인식되지 않은 것을 부정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함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그대는 추리 증언 비정 어느 것에 의해 모든 것을 인식하고 나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우리는 말한다.

 

 추리 증언 비정, 또 추리와 증언에 의해 증명된 대상과 비유에 의해 비정된 대상도 지각의 비판에 의해 이미 인식되고 있다.

 

 지각이라는 인식 방법의 비판에 의해 추리 비정 증언은 함께 비판된 걸로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공인 까닭으로 지각이라는 인식 방법도 공인 것처럼 추리 비정 증언도 모든 것의 공성에 근거해서 공이다. 추리에 의해 증명되는 대상 증언에 의해 증명되고 비정에 의해 증명되는 대상도 모든 것이 공이기 때문에 공이다. 추리 비정 증언에 의해 사물을 인식하는 사람도 또 공이다. 그런 까닭에 사물의 인식은 있을 수 없고, 인식되지 않는 것의 본체를 부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그대가 말하는 것도 합리적이 아니다.

 

 또, 사물의 부위에 통한 사람들은 선한 모든 사물에는 선한 본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밖의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각각 본체의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세간에서, 사물의 부위에 통한 사람들은 백열아홉의 사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인식, 감각, 표상, 사유, 접촉, 주의, 욕, 이해, 정진, 기억, 삼매, 단정, 무관심, 예비 수행, 완전한 예비 수행, 득, 종교적 의지, 무노, 만족, 노력, 열의, 치, 세력, 불해, 자재, 적의, 불회, 취착, 불취착, 기억의 재출, 견고, 집착, 불열의, 무혹, 무세력, 기원, 서원, 교만, 대상에 대한 무집착, 미계에서 떠나지 않는 것, 생기, 지주, 무상, 구유, 노, 열뇌, 불만, 심, 희, 정신, 부적당한 이해, 애, 불순, 정당하게 배우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것, 존경, 찬탄, 신애, 불신애, 순종, 경례, 불경, 경안, 웃음, 말, 동작, 성취, 불정신, 불경안, 청정, 숙련, 온아, 회, 근심, 뇌, 노, 정당하게 배우는 것, 의심, 청정한 자제, 내적 정신, 외포에 이르기까지의 한 부분, 신빙, 참, 정적, 불기, 적정, 안정, 불방일, 온화, 숙려, 염리, 불갈망, 불교, 무탐, 무진, 무치, 전지, 불방사, 부, 괴, 감추지 않는 것, 사고, 비애, 자애, 의기소침하지 않는 것, 무번뇌, 신통, 불한, 부질, 마음의 힘이 다하지 않는 것, 인욕, 방기, 성적 향락을 떠나는 것, 향수하는 데 적합한 것, 복덕, 무상정, 미계에서 떠나게 되는 것, 전지가 아닌 것, 무제약자 등이다.

 이상 백 열아홉의 좋은 사물에는 선의 본체가 있다.

 마찬가지로 악한 모든 사물에는 악의 본체가 있다. 선과 악의 어느 것으로도 결정되지 않으나 깨달음의 방해가 되는 모든 사물에는, 그와 같은 본체가 있다. 본성으로서 선과 악 어느 것으로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모든 사물에는, 그와 같은 본체가 있다. 비물질적인 것으로 불리는 모든 사물에는, 비물질적으로 불리는 것의 본체가 있다. 번뇌가 없는 모든 사물에는, 무번뇌의 본체가 있다, 고, 고의 원인, 고의 지멸, 멸에 이르는 길이라고 불리는 본체가 있다. 수도위에 있어서 끊어지게 되는 것에는, 수도위에 있어서 끊어지게 되는 본체가 있다. 끊어질 수 없는 것에는, 끊어질 수 없는 본체가 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종류의 사물의 본체가 경험되는 것이므로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고 본체를 갖지 않으므로 공이다라고 그대가 말한 것은 옳지 않다.

 

 또, 미계로부터 출리로 인도하는 것으로 정해진 사물의 부위에 있는 것에는, 출리로 인도하는 본체가 있다. 출리로 인도하지 않는 것, 그 밖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그 사물의 부위가 미계로부터의 출리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정해져 있는 모든 사물에는, 출리로 인도하는 본체가 있다. 출리로 인도하지 않는 것에는, 출리로 인도하지 않는 본체가 있다. 깨달음의 부분인 것에는, 깨달음의 부분인 본체가 있다. 깨달음의 부분이 아닌 것에는, 깨달음의 부분이 아닌 본체가 있다. 깨달음의 도움이 되는 것에는, 깨달음의 도움이 되는 본체가 있다. 깨달음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는, 깨달음의 도움이 되지 않는 본체가 있다. 이리하여 갖가지 사물에는 각각 그 본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고 본체를 갖지 않으므로 공이다라고 그대가 말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만일 모든 사물에 본체가 없다면, 본체를 갖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이 명칭 자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응하는 실재물을 갖지 않는 명칭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것에 본체가 없다면, 그 본체를 갖지 않는 것에도 본체가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 경우 본체를 갖지 않는 것이라 하는 이 명칭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응하는 실재물이 없는 명칭이란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명칭이 있는 이상 사물에는 본체가 있는 것이며, 본체가 있는 이상 모든 것은 공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고, 본체를 갖지 않기 때문에 공이다라고 그대가 말하고 있는 옳지 않다.

 

 또, 본체는 있지만, 그것은 모든 사물에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모든 사물과는 별개로 그 본체가 속해 있음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응하는 실재물이 없는 명칭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본체 그 자체는 있지만 그것은 모든 사물에는 속해 있지 않다. 이렇게 풀이하면 모든 사물에는 본체가 없는 것이 되고 사물의 공성은 성립되며, 그리고 명칭이 대응하는 실재물을 갖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만일 그대가 말한다면, 그것에 대해 우리는 말하겠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사물이란 것은 별개의 것이며, 또 본체가 속해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에 본체는 있지만, 그것은 모든 사물에는 없다고 하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또, 집에 병은 없다고 하는 형식의 부정은 본래 병이란 것이 존재해 있을 때에만 행해진다. 따라서 그대에게 있어서, 본체가 있을 때에만 그 부정은 있을 수 잇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것이 존재해 있을 때에만 그것에 대한 부정이 행해지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부정도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집에 병이 없다고 하는 부정은, 본래 존재해 있는 병에 대해 행해지는 것으로 병이 전혀 존재해 있지 않을 때에는 그 부정도 없다. 그것과 꼭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에는 본체가 없다고 하는 부정은, 본체가 본래 존재할 때에 가능한 것이며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그 부정이 가능한 이상, 모든 것의 본체는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또 만일 그 본체가 없다면 그대는 그 말로써 무엇을 부정하는 건가.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의 부정은, 새삼스레 표현할 것도 없이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본체가 완전히 없다면, 그대는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말에 의해 무엇을 부정하겠다는 건가. 말을 하기 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부정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불에 차가움이 없음이나 물에 뜨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또, 그리고 부정하는 그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리석은 사람은 아지랭이를 물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와 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잘못 이해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즉 그대는 생각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아지랭이를 보고 물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고 하자. 그것에 대해 유식한 사람이 그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그 아지랭이는 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일이 있다. 그와 같이 사람들이 본체가 없는 것에서 본체를 잘못 인정하고 있을 때,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것은 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말하리라.

 

 설령 이같은 경우라도 이해와 이해되는 것과 이해하는 사람, 부정과 부정되는 것과 부정하는 사람이라는 여섯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사람들의 잘못된 이해는 있는 것이며, 이해되는 것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 잘못된 이해의 부정이 잘못된 이해라고 부정되어야 할 것, 그대들처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여섯 가지가 존재하고 있다. 이 여섯 가지가 존재하고 있는 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만일 이해도 없고, 이해되는 것도 없고,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 부정도, 부정되어야 하는 것도, 부정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이 되지 않는가.

 

 그것과 같은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이해도, 이해되는 것도,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고 그대가 말할 경우에는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는다고 하는 형식의, 오해의 부정도 있을 수 없으며, 부정되는 것도, 부정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만일에 부정, 부정되는 것,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면, 모든 것은 존재하게 되고 그것들의 본체도 존재하게 된다. 

 

 만일, 부정도, 부정되는 것도, 부정하는 사람도 없다면, 모든 것은 부정되지 않고 존재하며, 모든 것의 본체도 존재하게 된다.

 

 또, 그대의 의론에는 근거가 없다. 본체가 부정되고 마는데 어떻게 근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대의 의론의 내용에 근거가 없을 때에는, 그것이 증명될 리가 없다.

 

 모든 것에는 본체가 없다고 하는 이 의론의 내용에 대한 근거는, 그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냐 하면,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아 공인데, 어떻게 근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근거가 없을 경우에는 모든 것은 공이다라는, 근거도 없는 의론의 내용이 어떻게 증명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것은 공이다는 옳지 않다.

 

 만일, 그대의 본체에 대한 부인이 근거도 없이 성립한다고 하면, 내 쪽에서도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본체가 있는 것이 성립하리라.

 

 만일 그대가, 사물에 본체가 없는 것을 별다른 근거 없이도 증명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대에게 있어서 근거도 없이 본체의 부인이 성립되듯이, 내게 있어서도 근거는 없지만 본체가 있음이 성립된다.

 

 거꾸로 근거가 있다면, 사물이 본체가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어느 세계에서도 본체를 갖지 않는 것들은 아무것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면,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세상에 본체를 갖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부정하는 것이 앞에 있고, 부정되는 것이 뒤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부정하는 것이 뒤이고 부정되는 것이 앞에 있어도, 둘이 동시에 있어도, 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본체는 어디까지나 있는 것이다.

 

 이 부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먼저 있고, 부정되는 것이 뒤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부정이 있을 당시는 아직 부정되는 것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부정한단 말인가. 또 부정하는 것이 뒤에 있고 부정되는 것이 먼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부정되는 것이 먼저 이미 존재해 버렸을 때에 부정하는 일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부정하는 것과 부정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부정하는 것은 부정되는 것의 작용 원인으로는 되지 않으며, 부정되는 것이 부정하는 것에 대한 작용 원인도 되지 않는다. 동시에 존재하는 둘 사이에 작용이 없는 것은

 예를 들면, 토끼의 머리에 동시에 나 있는 두 개의 뿔 가운데, 오른쪽 뿔이 왼쪽 뿔에 대한 작용 원인도 되지 못하고, 왼쪽 뿔이 오른쪽 뿔에 대한 작용 원인도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본체를 갖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