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최문자 - 하얀 것들의 식사
사무엘럽
2020. 12. 9. 12:30
양 한 마리
잔뜩 하얗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다
풀 옆으로 다가가 풀을 뜯는다
저리로 가서
부끄럼도 모르고
아주 잠깐 은밀하게 남의 것을 쉽게 뜯고 먹는다
하루 종일 자기를 질겅질겅 밟아야
밥이 먹어지는데
질겅질겅 밥을 밟고 서서
밥을 먹는다
하얀 것들도 밥 앞에서는 온 힘으로 까맣다
양 한 마리
밥을 만지는 입이 둥글고 아름다워 보인다
목화솜처럼 하얗게 생겼지만
아주 잠깐 남의 긴 풀을 베어 간다
저 불량한 식사를 위해
양은 노래할 입이 없다
풀에겐
새하얀 공포
얼음 같은 입
너무 하얀 것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