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 연 날리기

사무엘럽 2020. 12. 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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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부는 날

 애인은 자꾸 울었다

 이륙하고 싶어서

 

 줄을 감았다 풀어 줬다 했다

 

 흔들흔들

 너무 차갑다고

 너무 뜨겁다고

 애인은 날아가지 않았다

 

 차라리

 자주 착륙하는 절망을 사랑하자

 

 연은 상수리나무 높은 가지 끝에 걸렸다

 

 애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눈물에 대하여 낙법에 대하여 무모했던 애인의 애인

 너무 먼 데서 애인의 실을 잡고 있었다

 

 파릇한 나뭇가지

 거기 애인을 얹어 놓고 하산했다

 

 온갖 잿빛 구름 아래서

 애인은 정지해 있다

 아무도 으르렁거리지 못하게

 당기면 팽팽하다

 

 여름에 찢어놓고

 겨울에 아무렇게나 얼어붙을 애인

 

 바람 부는 밤

 밖은 음산했고 애인은 뒤에서 울었다

 

 연은 죽은 새처럼 말이 없다가

 무섭게 몸을 떨었다

 실을 아무리 풀어 줘도 날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