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명 - 서정적인 잠

사무엘럽 2020. 11. 10. 01:59

 

쇼펜하우어 필경사, 천년의시작

 

 

 거친 소식을 띄웁니다

 마른 잠을 불쏘시개로 던지거나

 젖은 잠을 물에 적시는

 밤이 운영하는 가위질 소리를 전합니다

 

 아스팔트 위를 기는 지렁이가 잘리고

 구부러진 힘을 펴는 역사의 집착이 잘린

 

 눈을 감으면

 밤이 화차 부려 별똥별을 띄우고

 밤이 수차 돌려 길을 떠나는

 불길이 물길 되는 꿈길, 끊어져

 토막잠이 표정을 결제하는 곳

 달아난 말을 점검하느라 새벽의 발목이 없는 곳

 

 게으른 잠을 주세요

 아픔으로 살찐 말들이 이불을 어루만지며

 오늘의 우울을 복기하고 기록함에

 낯간지럽지 않게

 달빛 소복한 일요일을 주세요

 

 행복이 낙진처럼 떨어지는 기다란 문장으로

 결핍이 충만한 마지막 만난 저녁 쪽으로

 오래되지 않은 기억이 말라 가지 않도록

 늑장 부리는 잠을 토막 치지 말아요

 

 잘린 환절로 일가를 이루는 지렁이처럼

 구부러진 힘이 일상을 빛내는 역사처럼

 꿈 조각 덧댄 퀼터로 한밤을 손질할 겁니다

 

 잠 못 이루는 잠을 만졌던 달은

 자정 지나

 푸른 병실로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