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 비단길
이번 방학에 내 열병을 문병 갔다 왔다
나 여기서 아이 업고 뽀뽀하고
박꽃 같은 살냄새 유장하게 흐드러질 적에
땡볕에 지린내 구린내 칠갑하고
내 고통이 그곳에서 혼자 끓고 있다고 간간이 소식 왔었다
그 속을 잇몸 다 내놓고 헉헉거리는 낙타처럼
숨겨놓은 내가 가고 있다고
녹아내릴 듯 얇은 비단에 몇 자 적어
불현듯 열병이 찾아와 내 몸속을 두드리다 갔지만
나중에...... 나중에...... 나 흐드러지다가
문득 몇십 년 지나 문병 갔다 왔다
나 태어날 적에 한 번 폭발한 뒤
아직도 폭발 중인 무시무시한 수소 폭탄처럼
미친 해가 아직도 붉었다가 검었다가 하는
파편을 쏟아 붓고 있는 사막에
한 번도 빗물의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아본 적 없어
백각으로 천각으로 뾰족하게 갈라진 돌이 쌓인
사막의 검은 언덕을 늙은 낙타가
천사만사 얇은 비단 겹겹이
열꽃 핀 나를 싣고 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씹어야 하는 흰 낙타풀은 가시가
손가락만큼씩이나 굵고
낙타의 입에선 쉴 틈 없이 피가 쏟아졌다
세상에 이리도 고통뿐인 곳이 있다니
신기루 속에서 내 딸은 열반 든 부처가
옆으로 길게 누운 절간을 보았다지만
나는 자꾸만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시퍼렇게 높은 파도를 삼켜야 했다
삼킬 때마다 붉은 모래 회오리가 몸속을 휘돌았다
응급실 침상 위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의 몸엔 진통제 바늘 꽂을 틈도 없이 붕대가 감겼는데
엄마는 24시간 한시도 쉬지 않고 윤이야 윤이야
아이의 몸에서 이름을 꺼내려 하고 있다
사막에서 돌아와 열병으로 응급 침상에 누운 내가
아직도 검은 돌산을 오르는 내 낙타를 멀거니 본다
나 여기 있는데 저 혼자 화염산 오르는 더러운 낙타를 본다
나는 낙타더러 너는 그리 가라 나는 이리 가겠다고
그래서 언젠가 하늘 가까운 그 호숫가에서 만나자고 몸서리를 친다
열에 들뜬 잠 속에서 시퍼런 신기루를 나 혼자 꿀꺽꿀꺽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