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 비의 미장센

사무엘럽 2020. 12. 4. 10:07

 

문학수첩)오늘의 냄새 : 이병철 시집 (시인수첩 시인선 10) [새미]원룸속의 시인들 - 새미비평신서 22, 새미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이병철 산문집, 산지니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북레시피

 

 

 비는 / 부드러운 카메라 무빙과 / 거친 필름 질감을 / 혼합한다 / 배우들이 우산 아래 감춘 눈썹은 색감이 과장됐다 / 코끼리 늑골보다 더 굵은 우울이 / 배우들의 불규칙한 식습관을 읽어나간다 / 자막을 삽입하느라 필름 빛깔로 눈이 물든 택시 기사들이 / 일본어 중국어 회화책을 들고 있다 / 현장에선 누군가 라면을 쏟아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 면발을 쪼아 먹는 비둘기들은 너무 뚱뚱해 / 소품으로 쓸 수가 없다 / 어스름이 필름을 문질러 /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를 만든다 / 냉동 탑차와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합을 맞춘 액션 신은 / 롱테이크로 간다 / 널브러진 피자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근접 촬영해 / 안개로 위장한다 안개 속에서 일그러지는 몸짓들 / 앰뷸런스에 길을 내주는 운전자들의 연기는 부자연스럽고 / 피가 아스팔트를 스멀스멀 기어가거나 / 뒤집힌 오토바이 바퀴에 불빛이 휘감기는 건 / 낡은 미장센

 

 이것은 비가 자주 쓰는 연출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