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 일기예보

사무엘럽 2020. 12. 3. 09:21

 

문학수첩)오늘의 냄새 : 이병철 시집 (시인수첩 시인선 10) [새미]원룸속의 시인들 - 새미비평신서 22, 새미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이병철 산문집, 산지니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북레시피

 

 

 잡풀들이 울고 있어

 겨울밤 침대의 온기와

 비스듬히 기울던 네 어깨의 경련이 들려

 씁쓸한 교정에서 울리던 차임벨 소리가

 약 기운처럼 내 폐부로 가라앉아

 오, 내게로부터 뻗은 길들이 뒷걸음질 쳐

 왜 발자국마다 불쾌한 저기압을 남겨온 거지?

 여전히 깊은 뿌리에선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을까

 발소리 멎은 자리, 떨리는 네 입술에선

 말할 수 없는 말들만 후드득후드득 방울져 내려

 네 숨결은 독보다 달구나

 침묵으로 지은 집은 무너질 것만 같아

 

 네 입술이 닫히는 시간

 세상의 모든 문들도 닫히고

 문을 품었던 집들은 와르르 무너져

 젖은 먼지 날리는 네 숨결 속에서

 고양이 새끼마냥 웅크린 불씨들이 태어나

 

 나자마자 어른이 되어버린 불의 눈빛은

 몸속에 수만 줄기 길을 내며 타오르고

 나이테들은 가장자리부터 차례대로 지워져

 가엾은 추억들아, 필라멘트를 꺾지 마

 아직 내 속살에 새겨지던 그 지문을 기억해

 보드라운 날갯짓이 어떻게 인두가 될 수 있었을까

 

 다시, 침묵들이 방울방울 떨어져

 물관 속에서 깜박거리는 불씨들

 수억 촉 고통은 무슨 힘으로 불을 밝히지?

 이제 물에 젖지도 불에 타지도 않는 몸뚱아리

 까맣게 그을린 나는 얼마나 단단해졌나

 언젠가 네 얼굴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날

 뒤틀리고 찢긴 살결을 보이며

 검게 물든 엽록소를 배설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