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병철 - 저승사자 놀이를 하던 대낮
사무엘럽
2020. 12. 2. 20:40
이것은 돋보기로 개미를 태우던 날의 일기다
괄약근 풀린 태양이 묽은 빛을 한 무더기 싸지르던 대낮
냄새와 향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라일락 한 움큼씩 꺾어 버리다 지루해졌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금지된 아이들의 발치로
커피 알갱이 같은 개미 떼가 알레그로 모데라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음악의 악보를 그리며 기어올 때
저승사자 놀이를 하자!
잘 익은 머리통에서 실잠자리 같은 연기가 팔랑였다
구구단 너머에는 수가 없는 줄 알았기에
수북이 쌓인 개미들의 주검에서 웃음소리가 났고
돋보기에 고인 하늘이 찰랑거렸다
우리도 죽어?
묵직한 음악이 빛의 항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아이들의 목숨이 구구단을 넘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그날의 놀이를 잊어버렸지만
아이들은 걸어 들어갔다
돋보기로 개미를 태우던 날의 일기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