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 여름방학

사무엘럽 2020. 12. 2. 20:37

 

문학수첩)오늘의 냄새 : 이병철 시집 (시인수첩 시인선 10) [새미]원룸속의 시인들 - 새미비평신서 22, 새미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이병철 산문집, 산지니 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북레시피

 

 

 비누 냄새가 난다 오늘은 조금 늦었다 불이 켜진다 괜찮아 너도 늦었구나 우산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크다 우산을 접는다 물기 머금은 주황색 불빛이 단단해진다 샤워기에서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흠뻑 젖는다 장마가 즐거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게 눈에 와서 닿는다 물소리 빗소리 발소리...... 불빛이 쪼그라든다 화단 위로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팔에 묻은 흙이 빗물에 씻긴다 비누 냄새가 하얀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나는 체육복을 입었고 너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우리 사이엔 어둠과 담장과 알미늄 창문이 있고 어떤 시절도 거길 통과할 수 없다

 

 예쁘다

 예쁜 몸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