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유마경] 불이법문에 들어간다

사무엘럽 2020. 12. 1. 08:11

 

 

 보살의 불이문

 그때 비말라키르티는 여러 보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귀하신 분들이여, 보살이 불이에 들어가는 법문에 대해서 각자가 즐겨하는 대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중에 법자재라고 불리는 보살이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생겨나고 없어짐이 둘입니다. 그런데 생겨나는 일도 없고 일어나는 일도 없는 경우에는, 없어지는 일은 전혀 없다. '법은 무생이다, 라는 확신을 얻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길상밀 보살이 말했다.

 "내가 있고 내것이 있다고 하는, 이것이 둘입니다. 나를 공연히 구상하는 일이 없으므로 내것은 없게 됩니다. 공연히 구상하는 일이 없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길상봉 보살이 말했다.

 "더럽다고 하고 깨끗하다고 하는, 이것이 둘입니다. 만일 더러운 것을 충분히 알게 되면, 깨끗한 것에 대한 망신도 없어지게 됩니다. 모든 망신을 깨뜨리는 것, 그리고 그리로 인도하는 길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성 보살이 말했다.

 "움직임과 생각함이 둘입니다. 움직임이 없고, 따라서 생각이 없게 되면 주의를 모으는 일도 없고, 관련하는 것도 없습니다. 관련하는 것이 없음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묘비 보살이 말했다.

 "보살의 마음과 성문의 마음, 이것이 둘입니다. 그것들이 헛그림자의 마음과 같다고 보게 되면, 거기에는 보살의 마음도 없고, 성문의 마음도 없습니다. 마음의 모습이 같은 것,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순 보살이 말했다.

 "취하는 것과 취하지 않는 것이 곧 둘입니다.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식하지 않는 것으로서 인식하지 않을 때는, 거기에 판단해서 취하는 일도 없고 없애 버리는 일도 없습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 만들지도 않고 작용도 하지 않는,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안 보살이 말했다. 

 "일상이라 말하고 무상이라 말하는 것이 둘입니다. 판단을 그만두고 분별을 그만두게 되면, 그것은 일상이라고도 하지 않고, 무상이라고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느 상과 다른 상에 있어서 상은 평등하다고 깨달으면, 그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티슈아 보살이 말했다.

 "선과 악이 둘입니다. 선과 악을 탐구하지 말고 특질도 무특질도 다르지 않다고 알면, 그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자 보살이 말했다.

 "과실이 있다, 과실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다른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금강과 같은 앎을 가지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알게 되면,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자혜 보살이 말했다.

 "이것이 번뇌를 동반하고, 저것에는 번뇌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평등성을 가지고 존재를 알고, 번뇌 무번뇌의 관념이 없는 동시에 또 관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평등성에 있어서도 평등성을 얻은 것도 없이 그 관념의 묶임이 풀린다, 라고 이해하게 되면,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낙신 보살이 말했다.

 "이것은 행복, 이것은 불행이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지식이 자주 청정하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떠나 있고 지혜가 허공처럼 막히는 일이 없으면,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라연 보살이 말했다.

 "이것이 세간과 출세간이 둘입니다. 그러나 세간의 본성이 공인 경우, 거기에는 아무것도 거기서 나오는 일도 없고 거기로 들어가는 일도 없으며, 가는 일도 가지 않는 일도 없습니다. 나오는 일도 없고 들어가는 일도 없는, 가지 않는 일도 없는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복혜 보살이 말했다.

 "윤회와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윤회의 본질을 뚫어 봄으로써 이제는 윤회하지도 않고, 따라서 열반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견 보살이 말했다.

 "다한다, 다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입니다. 그런데 다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다하는 것이며, 철저하게 다하는 것은 그 이상 다할 것이 없으므로 다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됩니다. 또 다하지 않는 것은 찰나적인 것으로, 찰나적인 것에는 다하는 일도 없고 따라서 다하지 않는 일도 없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곧 불이의 법문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밀 보살이 말했다.

 "유아와 무아란 것이 둘입니다. 나라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둘의 본질을 보는 것에 의해 무이로 되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전광신 보살이 말했다.

 "지와 무지가 둘입니다. 지는 본질적으로 무지와 다름이 없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것, 계량의 길을 넘은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희견 보살이 말했다.

 "색과 공이 둘입니다. 색은 그대로 공으로서, 색이 없어져서 공이 되는 것은 아니며, 색이 본성으로서 공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감수 관념 형성력 식지라 말하고, 공성이라 말하는 것이 둘입니다. 식지가 그대로 공성인 것으로 식지가 없어져서 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식지의 본성이 공인 것입니다. 이 경우, 집착된 오온에 관해서,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앎을 가지고 알게 되면,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광당 보살이 말했다. 

 "사계와 허공계가 따로따로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사계는 허공계를 본성으로 하여 과거도 허공계의 본성이고, 미래도 현재도 허공계를 본성으로 합니다. 이와 같이 계를 이해하는 앎, 그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묘혜 보살이 말했다.

 "눈과 눈에 보이는 색이 둘입니다. 눈을 다 앎으로써 색에 대해 애착하지 않고, 노여워하지 않고, 무지하지 않는 것을 적정이라 불립니다. 마찬가지로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음과 법은 둘입니다. 마음을 다 알아 법에 집착하지 않고 노여워하지 않고, 무지하지 않는 것이 적정이라 불립니다. 이와 같이 적정인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진혜 보살이 말했다.

 "보시와 일체지에의 회향이 둘입니다. 그러나 보시의 본질은 일체지이며, 일체지의 본질은 보시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와 일체지에의 회향이 둘이라고 말해집니다. 그러나 일체지란 것은 지혜를 본질로 하고, 또 회향은 일체지를 본질로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의 도리를 아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심혜 보살이 말했다.

 "공성과 무상과, 무원과는 따로따로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그러나 무릇 공성이란 것, 그곳에는 아무런 상도 없고 상이 없는 곳에는 원도 없고 원이 없는 곳에는 마음도 뜻도 식지도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같이 한 해탈문 속에 모든 해탈문을 보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적정근 보살이 말했다.

 "불 법 승을 나누는 것이 둘입니다. 그러나 불의 본성은 법이요, 법의 본성은 승입니다. 그것들은 어느 것이나 무위이며, 무위는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허공과 같다고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애안 보살이 말했다.

 "몸과 몸의 소멸이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그러나 몸은 그대로 소멸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몸을 개아라고 하는 그릇된 관념이 실재하지 않고 성립되지 않을 때, 무엇인가를 보고, 그것이 몸이니 몸이 없어진 것이니 하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판단되지 않고 둘이 분별되지 않으므로 몸은 없어짐을 본성으로 하는 것이 됩니다. 이와 같이 생겨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는 것,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조복 보살이 말했다.

 "몸과 말과 마음의 세 가지에 관한 규제는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무작위라고 하는 성질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몸의 무작위라고 하는 것이 말에 있는 무작위의 성질이며 마음의 무작위의 성질도 됩니다. 모든 것이 무작위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이같이 무작위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전 보살이 말했다.

 "공덕과 비공덕과 그 어느 것도 아닌 세 가지 행위가 행해진다는 것이 둘인 것이고, 공덕과 비공덕과 그 어느 것도 아닌 것과 모두가 무작위라고 하는 것이 불이인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가 공으로서 공덕도 없고, 비공덕도 없고, 그 어느 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작위한다고 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같이 모든 것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화엄 보살이 말했다.

 "자아가 일어나는 것에서 나와 나 아닌 둘의 대립이 생깁니다. 자아를 참으로 아는 사람은, 이 둘의 대립을 낳게 하지 않습니다. 이같이 둘의 무 속에 있을 때, 아는 것도 없고, 알게 되는 것도 없다고 하는 것,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길상태 보살이 말했다.

 "인식에 의해 둘의 대립이 현실화하고, 인식이 없는 것에 둘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인식의 결과로서 승인을 하거나 거부하는 일이 없는 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월상 보살이 말했다. 

 "어둠과 밝음이 둘이고,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이 무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멸진정에 들어가게 되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게 될 것입니다. 모든 존재도 그와 마찬가지로서, 그것의 평등성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보인수 보살이 말했다.

 "열반을 기뻐하는 것과, 윤회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둘입니다. 열반도 기뻐하지 않고, 윤회도 싫어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입니다. 왜냐하면 속박이 있음으로 해서 해탈을 말하게 되는 것인데, 만일 전혀 속박이 없다면 어떻게 거기로부터 해탈을 찾겠습니까.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비구는 기뻐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정왕 보살이 말했다.

 "바른 길과 틀린 길이라고 하는 것이 둘입니다. 그러나 바른 길에 있는 사람은 벌써 사도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으며, 사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도의 관념도 사도의 관념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 관념을 알아 버린 때는 둘의 대립되는 앎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실 보살이 말했다.

 "진실과 허위가 둘입니다. 그러나 벌써 진실에 이른 사람도 그 진리성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허위를 보는 일이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진리성을 본다는 것은 육안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눈을 가지고 보는 것이며, 그것은 보는 일이 없고 나타나는 일이 없는 형태로 보는 것입니다. 보는 일도 없고 나타나는 일도 없는 이것이 곧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여러 보살들은 각각 자기의 말을 끝마치고 문수사리에게 질문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불이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했다.

 "고귀한 선비여, 당신들의 말은 모두 다 좋으나 그러나 당신들이 말한 것은 그것도 또 모두 둘인 것입니다. 일체법에 대하여 말 없이 설하지 않고 제시하는 바도 없고, 무언가 식별하지 않으며 또 갖가지 문답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 이것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문수사리는 비말라키르티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각자의 생각을 말했는데, 당신도 불이의 법문에 대해 뭔가 말해 주었으면 합니다만......"

 그때, 비말라키르티는 입을 다물고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문수사리는 비말라키르티를 칭찬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이것이야말로 보살이 불이에 들어가는 것으로 거기에는 문자도 없고, 말도 없고, 마음이 작용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같이 일불이법문품을 설할 때, 대중들 중 5천의 보살들이 불이 법문에 들어가 모두 법이 무생이다, 라는 확신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