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소 - 썰물

사무엘럽 2020. 11. 30. 20:26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파란 제4번 방, 천년의시작 셰익스피어 헤어스타일, 호밀밭 순진한 짓, 사문난적

 

 

 첫눈...... 하는데 첫눈이 온다. 밀물...... 하는데 밀물이 온다. 내 생각은 창문이 너무 많다. 창문이 많은 집은 얼룩도 많다. 등대...... 하는데 등대는 보이지 않는다. 사각의 창틀에는 사각의 유리가, 서른 개의 계단에는 서른 개의 걸음이, 오늘의 일기예보는 내일의 날씨가.

 내가 하는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번개...... 하는데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 하는데 천둥이 친다. 모래는 모래를 이해하기 위해 백사장으로 왔는지도 모른다. 물방울은 물방울을 이해하기 위해 바다로 왔는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인생이 가장 작아졌거나 가장 커졌을 때.

 오전과 오후, 밤과 낮, 여자와 남자, 차도와 인도, 해와 달...... 너와 나의 이분법들, 안개...... 하는데 꽃이 두근거린다. 구두...... 하는데 총소리가 난다. 3초 간의 불안, 3초 간의 광기. 검은 해안선에는 얼굴이 없다. 바다와 바닥 사이에서 젖었다 말랐다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는 작은 갯바위 하나, 꽃은 죽어도 꽃이다.

 내 사랑의 수위를 낮춘다. 네 쇄골보다 낮게, 네 명치보다 낮게, 네 배꼽보다 낮게. (콩팥이란 말 참 좋다, 네 콩팥보다 더 낮게.) 그만하자. 이건 너무 통속적이다. 다시 시작하자, 전략적으로. 너에 대한 사랑의 수위를 낮춘다. 네 무릎보다 낮게, 네 발목보다 낮게, (네 노란 생각의 깊이보다 더 깊이.)

 거미...... 하는데 한 사람이 서 있다. 말미잘...... 하는데 누군가 쿡쿡 웃는다. 자연은 비밀이 너무 많다. 뻘은 비밀의 글자로 적은 비밀 편지 같다. 한번 빠진 발을 더 깊이 빨아들이는 물컹물컹한 글자들. 너는 너무 쉽게 움직이는 물질이어서, 나는 나를 고정시킬 수가 없다. 홍합처럼 족사를 가지고 싶은 마음.

 이렇게 솔직해도 좋은 것일까, 가령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이렇게 예측 가능해도 괜찮은 것일까, 누군가를 진짜 속여야 한다면. 이렇게 용의주도해도 슬픈 것일까, 결국 그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몰라서 계속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