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소 - 다정한 모자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일요일은 아니다
부탁이 있어
내가 죽으면 저 바다에 뿌려 줘
안 돼요 바다에
쓰레기를 버렸다고 벌금을 물게 될 거예요
한 개의 사과가 한 개의 접시 옆에 있다
공휴일도 아니다
너에게는 밑밥을 잘 던지는 기술이 있잖니?
고객에게나 고기에게나
밤안개가 음악처럼 잔잔하게 깔리는 날
밤바다에 밤낚시를 하러 가는 거야
너는 낚시꾼 나는 밑밥
오케이?
한 개의 접시 옆에 두 개의 포크가 있다
그렇게 늦은 밤도 아니다
안 돼요
내가 병든 물고기를 먹을 수는 없어요
여보세요 병든 물고기는 먹는 게 아니라
파는 거란다
그게 이 세상의 진리란다 나도 비싼 값을 주고
병든 인생을 산 경험이 있어
나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만났어
그래도 안 돼요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차라리 땅을 파겠어요
과도는 내 오른손에 잡혀 있다
오른손은 사과 옆에 없다
안 돼! 지금 나보고
죽어서도 애를 키우라고 하는 거냐?
죽어서도 애벌레가 되라고 하는 거야?
애호박 애물단지 애매모호 나는 애로 시작하는 것은
다 싫다 애늙은이도 싫다
애들은 언제나 애가 쓰이게 하잖아
나는 다 컸어요 내 애는 내가 키울 수 있어요
애인처럼 다정한 모자를 상상해 보세요
사과는 붉고 푸르고 접시는 길고 푸르고
포크는 뼈만 남았다
잔인하구나 나보고 모자를
죽어서도 쓰라고 말하는구나 죽어서 쓰는 모자는
봉분밖에 더 있니?
모자는 외출할 때 쓰는 물건이란다
아무리 모자를 좋아하지만
봉분을 쓰고 외출할 수는 없지 않겠니?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포크는 나란히 누워 있다
오늘도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렸어요
외출할 때 모자보다는
마스크에 신경을 쓰도록 하세요
이젠 내 얼굴이 부끄러운 모양이구나
다시 부탁하마 내가 죽으면
저 산꼭대기에 뿌려 주거라 정상에 오르면
정상에 오른 사람답게
변함없이
부드럽고 따듯하고
변함없이 변하는 마스크를 꼭 쓰도록 하마
우리는 식탁에 앉아 있다 식탁은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둥근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