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소 - 다정한 모자

사무엘럽 2020. 11. 30. 12:31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파란 제4번 방, 천년의시작 셰익스피어 헤어스타일, 호밀밭 순진한 짓, 사문난적

 

 

 우리는 식탁에 앉았다

 일요일은 아니다

 

 부탁이 있어

 내가 죽으면 저 바다에 뿌려 줘

 

 안 돼요 바다에

 쓰레기를 버렸다고 벌금을 물게 될 거예요

 

 한 개의 사과가 한 개의 접시 옆에 있다

 공휴일도 아니다

 

 너에게는 밑밥을 잘 던지는 기술이 있잖니?

 고객에게나 고기에게나

 밤안개가 음악처럼 잔잔하게 깔리는 날

 밤바다에 밤낚시를 하러 가는 거야

 너는 낚시꾼 나는 밑밥

 오케이?

 

 한 개의 접시 옆에 두 개의 포크가 있다

 그렇게 늦은 밤도 아니다

 

 안 돼요

 내가 병든 물고기를 먹을 수는 없어요

 

 여보세요 병든 물고기는 먹는 게 아니라

 파는 거란다

 그게 이 세상의 진리란다 나도 비싼 값을 주고

 병든 인생을 산 경험이 있어

 나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만났어

 

 그래도 안 돼요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차라리 땅을 파겠어요

 

 과도는 내 오른손에 잡혀 있다

 오른손은 사과 옆에 없다

 

 안 돼! 지금 나보고 

 죽어서도 애를 키우라고 하는 거냐?

 죽어서도 애벌레가 되라고 하는 거야?

 애호박 애물단지 애매모호 나는 애로 시작하는 것은

 다 싫다 애늙은이도 싫다

 애들은 언제나 애가 쓰이게 하잖아

 

 나는 다 컸어요 내 애는 내가 키울 수 있어요

 애인처럼 다정한 모자를 상상해 보세요

 

 사과는 붉고 푸르고 접시는 길고 푸르고

 포크는 뼈만 남았다

 

 잔인하구나 나보고 모자를

 죽어서도 쓰라고 말하는구나 죽어서 쓰는 모자는

 봉분밖에 더 있니?

 모자는 외출할 때 쓰는 물건이란다

 아무리 모자를 좋아하지만

 봉분을 쓰고 외출할 수는 없지 않겠니?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있다

 포크는 나란히 누워 있다

 

 오늘도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렸어요

 외출할 때 모자보다는

 마스크에 신경을 쓰도록 하세요

 

 이젠 내 얼굴이 부끄러운 모양이구나

 다시 부탁하마 내가 죽으면

 저 산꼭대기에 뿌려 주거라 정상에 오르면

 정상에 오른 사람답게

 변함없이

 부드럽고 따듯하고

 변함없이 변하는 마스크를 꼭 쓰도록 하마

 

 우리는 식탁에 앉아 있다 식탁은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둥근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