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여래의 가계
보살의 도
그때 문수사리가 비말라키르티에게 물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에 통달하게 되는 것입니까?"
비말라키르티가 대답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길이 아닌 길을 간다면, 불도에 통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보살이 길 아닌 길을 간다는 것입니까?"
비말라키르티가 대답했다.
"만약 보살이 다섯 무간죄를 짓더라도, 악의나 해치고자 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보살이 지옥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죄나 잘못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보살이 축생도에 가더라도, 무명이나 교만 등의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보살이 아귀도에 가더라도, 온갖 공덕을 구족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보살이 색계, 무색계의 길을 가더라도 잘났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탐욕을 부리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애욕에 물들거나 집착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것입니다. 진심을 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모든 중생에게 대해 적개심이나 증오심이 없는 것입니다. 바보 천치같이 보이지만, 지혜로써 그 자신의 마음을 조복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색하고 탐욕한 것같이 보이지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신명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듯 보이지만, 정계에 안주하고 작은 죄에도 크게 조심을 합니다. 참을성 없고 화를 잘 내는 것같이 보여도, 항상 인자하고 관대한 것입니다. 나태하고 게으른 듯 보이지만, 부지런히 공덕을 닦는 것입니다. 마음이 산란한 것 같이 보이지만, 항상 바로 생각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에 통달해 있는 것입니다. 아첨 비굴함 거짓등의 모습을 보이지만, 보살은 선교 방편으로 모든 경의 뜻을 따라 교화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교만한 행동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지만, 중생들에게는 마치 강을 건너게 해주는 다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보살은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것 같은 행위를 하지만, 항상 마음이 청정한 것입니다. 보살은 마라의 길을 따라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부처님 지혜에 수순하고 있으며, 결코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다. 보살은 성문들 속에 들어가는 듯 보이기도 하나, 중생들을 위해 일찍이 듣지 못한 법을 설하십니다. 보살은 벽지불들 속에 들어가는 듯 할 때도 있지만, 대비를 성취하고 중생을 교화합니다.
보살은 빈궁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나, 그들에게 그 보배로운 손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베풉니다. 보살은 때로 불구자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도 하나, 그는 모든 상호를 다 갖추고 스스로 장엄한 모습을 지킵니다. 보살은 미천한 사람들 속에 끼일 때도 있으나, 그는 부처님 종성 중에 태어나 갖가지 공덕을 갖추는 것입니다. 보살은 연약하고 추하고 비참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기도 하나, 그는 나라연의 몸을 갖고 일체중생이 즐겨 보는 바가 됩니다. 보살은 늙은이나 병든이들 사이에 들어가 있기도 하나, 그는 영원히 병의 뿌리를 끊었으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보살은 자신 있는 삶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그는 항상 무상을 관하고 사실상 아무것도 탐내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처와 첩과 채녀 등이 있음을 보이나, 항상 멀리 오욕의 진흙탕에서 떠나 있습니다. 보살은 말을 더듬으며 머리가 둔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변재를 성취하고 총명하여 총지하고 놓치는 일이 없습니다. 보살은 외도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 같이 보일 때도 있으나, 모든 중생을 정법으로 제도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갖가지 세속 생활에 두루 다 들어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나, 그 인연을 끊고 있습니다. 보살은 열반에 든 모습을 나타내지만, 생사를 끊지 않고 있습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이 비도를 행할 수 있으면 이를 곧 통달 불도라 하는 것입니다."
여래의 가계
그때, 비말라키르티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여래의 가계란 어떤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그릇된 개아의 관념을 낳는 몸이 여래의 가계입니다. 무명도 존재에 대한 애착도 그의 가계입니다.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이 가계입니다. 네 가지 도착도 오개도 가계입니다. 여섯 가지 인식의 장소가 가계이고, 일곱 가지 식주가 가계입니다. 여덟 가지 사도가 가계이고, 아홉 가지 불타의 고민이 가계이며, 열 개의 불선업도가 가계입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이런 것들을 여래의 가계라고 하는 것으로, 결국 육십이견과 일체의 번뇌가 여래의 가계에 속합니다.
비말라키르티가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같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무위를 봄으로써 이미 궁극의 결정에 이른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지 못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번뇌의 창고인 유위 속에 몸을 두고, 아직 진리를 보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무상의 깨달음을 향해 발심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여, 예를 들면, 건조한 고원의 척박한 땅에서는 백련과 같은 향기 높은 꽃은 피지 않습니다. 그것이 피는 곳은 진흙과 물 속의 습한 곳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위의 궁극성을 얻은 사람에게는 불법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생기는 것은, 번뇌의 진흙과 물 속의 습한 것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입니다. 또 예를 들면, 씨는 공중에서는 나지 않고 땅 속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위를 궁극으로서 얻은 사람들에게는 불법은 생장하지 않습니다. 수미산과 같은 높고 거만한 아견을 일으키고, 그리고 깨달음에 대해 발심할 때, 거기에 불법은 생장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모든 번뇌는 여래의 가계에 속하는 것으로 알아야 됩니다. 예를 들면, 큰 바다를 건너지 않으면 무가의 신기한 보물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번뇌의 큰 바다를 지나지 않고서는 일체지의 보배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가섭의 술회
그때 장로인 마하 카사바가 문수사리에게 찬성의 뜻을 펴며 말했다.
"대단히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여, 그 말은 훌륭하고 바른 것입니다. 참으로 번뇌야말로 여래의 가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 어떻게 깨달음을 향해 발심하고, 혹은 불법에 있어서 깨달음을 열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다섯 무간죄가 있는 사람이야말로 발심도 할 수 있고 불법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욕을 일으키는 육근이 다 썩은 사람에 대해서는 훌륭한 오관의 욕락도 효과가 없어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체의 번뇌를 끊어 버린 성문에 있어서는, 모든 불법도 효과가 없고 작용이 없어 그것 즉 불법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그런 까닭에 범부들이 여래의 은혜를 아는 것과 반대로 성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어째서냐 하면, 범부는 불타의 덕을 듣고, 삼보의 가계를 끊지 않기 위해 무상의 바른 깨달음을 향해 발심합니다. 그것에 반해, 성문은 비록 십력이라든가 사무외라든가 하는 불타의 덕을 일생 동안 들었다고 하더라도 무상의 바른 깨달음에 대해 발심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가족
그때, 이 모임에는 보현색신이라고 불리는 보살이 있었다. 그가 비말라키르티에게 물었다.
"가장이여, 당신의 부모와 처자와 하인 하녀와 가령과 고용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친구와 친척과 친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시자와 말 상 차 보 등 네 부대와 타는 물건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받고, 키말라비르티는 이 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대답했다.
1 모든 보살에게는 지혜의 바라밀다가 어머니
방편의 교묘함이 아버지
세상의 지도자인 보살은
그 부모 사이에 태어난다
2 법을 기뻐하는 것이 보살의 아내요
사랑과 슬픔은 여자 아이
법과 두 진실은 사내아이
공성에 대한 생각이 그의 집이다
3 모든 번뇌는 생각대로 부릴 수 있는 제자요
보살은 그들을 다스려 간다
친구는 깨달음에의 지분이며
그것에 의해 훌륭한 깨달음에 도달한다
4 언제나 사귀는 반려는 여섯 바라밀다
사섭사는 그 집의 여자들로서
그녀들의 노래함은 곧 법을 설함이니
이로써 그들의 기쁨 즐거움 삼네
5 모든 다라니가 원림이며
깨달음에의 지분은 꽃으로서 핀다
그 열매는 해탈의 앎
법의 거대한 재산이 줄기로 된다
6 팔해탈은 그들이 목욕하는 연못
거기에는 삼매의 물이 넘치고 있다
일곱 가지 깨끗한 연꽃이 수면을 덮어
그곳에 목욕하여 더러움을 없앤다
7 신통력은 보살의 수레
대승은 그들의 수레요
이를 끄는 마부는 보리심이며
여덟으로 나눠진 올바른 길을 달려간다
8 그의 꾸밈은 곧 삼십이상으로 장엄하고
팔십종호로 장식했다
참괴하는 마음 예복삼아 입었고
심오한 결심 관모삼아 썼다
9 그들은 훌륭한 법이라는 부를 갖고
그것을 쓰는 것은 곧 설법이다
깨끗하게 힘쓰는 것은 설법이다
깨끗하게 힘쓰는 것이 그 부로부터 오는 큰 이윤이며
깨달음에로 그것이 회향된다
10 네 가지 선정이 침상이며
때묻지 않은 생활의 이불이 그것을 덮는다
잠이 깨는 것은 여러 가지 앎
그리고 항상 법을 들으면서 마음을 집중한다
11 그들은 불사를 음식으로 삼고
그 마시는 것은 해탈의 맛을 지니고 있다
깨끗한 의욕을 가지고 목욕을 하고
바르는 향수는 계율이다.
12 번뇌의 적을 쳐부순 보살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불패의 용자이다
사마를 모두 제압하고
깨달음의 자리에 승리의 깃발이 세워진다
13 마음대로 태어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생도 기도 없다
널리 불국토를 빛나게 하는 것은
마치 떠오르는 태양과 같다
14 지도자에게 알맞는 온갖 공양의 물건으로써
몇 억이나 되는 불타에 공양한다
그러나 결코 자기들과 모든 부처와의 사이에
구별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15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알맞는 불국토의 건설을 행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토도 허공과 같은 것이라고 알고
중생도 실재하는 중생으로서 생각하는 일이 없다
16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의
형상과 내는 소리와 동작들 그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는 모든 보살은
한순간에 눈이 나타내 보인다
17 보살들은 마귀가 하는 짓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마귀를 따르는 듯한 행동을 한다
방편의 피안에 도달해 있는 그들은
마음대로 방편을 써 교화하고 있을 뿐이다
18 혹은 늙은이, 병든이,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모두 다 중생을 성취하고자 할 따름
모든 것 다 환화와 같음을 투철히 알고
걸림이 없이 모든 일에 통달해 있다
19 혹은 겁의 다함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천지를 붉게 물들여 불태우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모든 것 영원한 줄 아는 사람들에게
무상의 도리를 확실히 알게 하고자 함이다
20 무수억에 달하는 중생들이
함께 와 보살을 청할 때에는
동시에 그 각자들 집으로 가서 대접을 받고
제도를 하고 불도에 향하도록 한다
21 경서든 주술서든 그 밖의
각종 기술에 관한 책이든
이 모든 일에 다 능해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
22 세상의 갖가지 종교의 길 어디에서나
그들은 출가 승려가 되어
사람들의 미혹을 풀어 주고
사견에 떨어지지 않게 한다
23 혹은 달이 되고 해가 되고 하늘이 되고 제석천이 되고
범왕이 되고 세계의 주가 되고
또 때로는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또 때로는 바람이 되고 불이 된다
24 질병의 중겁 동안에는
약초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 약초를 달여 마심으로써
갖가지 독을 지우고 병을 고친다
25 기근의 중립 동안에는
보살이 음식물로 바뀌어 나타난다
먼저 그들의 굶주림 목마름을 가시게 하고
다음에 법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26 무기의 중겁 동안에는
그곳 사람들에게 인자한 마음을 일으켜
그곳 중생들을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싸움없는 곳
무쟁지에 살 수 있게끔 한다
27 큰 전쟁을 화해로 이끄는 한복판에서는
그들은 어느 쪽에도 평등하다
큰 힘으 가진 보살들은 화평을 실현하여
함께 결속되는 것을 기쁨으로 삼기 때문이다
28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모든 불국토와
지옥까지도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보살은 서슴지 않고 그곳으로 나아가
자기 생각에 따라 구제하기를 다한다
29 일체 국토 중에는
축생이 서로 물고 뜯는 곳이 있기 마련이나
보살은 그 속에 가서 태어나
그들을 이롭게 한다
30 애욕의 향락에 빠진 듯 보이나
동시에 선정자에 대해서는 선정을 나타낸다
즉 마귀를 제압하여
마귀가 엿볼 틈을 주지 않는다
31 불 속에서 연꽃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은
불도 연꽃도 함께 실재가 아니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애욕과 함께 선정을 행하는 것도
그 둘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고 있다
32 또 마음대로 음탕한 계집도 된다
그것은 사내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이며
애욕의 갈구리로 유인하여
그들을 불타의 앎 속에 둔다.
33 사람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촌장도 되고
대상의 대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국사 대신 수상으로도 된다
34 모든 빈궁한 사람을 위해서는
무진장한 보고가 되어
그들에게 베풀어 주고 권고하여
보리심을 발하게 하기도 한다
35 아상이 많고 교만한 자에게는
대역사가 되어 나타나
갖가지 거드름 갖가지 자만을 꺾고
무상도에 머무르게끔 한다
36 무서워 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의 앞에 선다
그들에게 안심을 주고
이윽고 깨달음을 향해 성숙시킨다
37 혹은 온갖 욕심을 끊고
다섯 가지 신통력을 갖춘 선인이 되어
보살은 모든 중생들을 개도하여
계와 인과 자에 머무르게끔 한다
38 만일 여기에 또 시중드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그들 두려움이 없는 보살들은
그의 하인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제자가 되어 시중든다
39 한 중생이 불도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따라 선교 방편의 힘으로
모두 다 마련해 주는 자가 바로 보살이다
40 그들의 배우는 것은 무한하며
또 그 대상도 무한하다
무한한 앎을 완성하여
사람들을 무한으로 해탈시킨다.
41 그들의 공덕은 무한하니
가령 일체의 부처님들이 무량억 겁에 걸쳐
그 공덕을 찬탄해도
아직 다함이 없으리라
42 지혜가 천박한 저열한 인간이 아니고
영리한 사람이라면
누가 이 법을 듣고
높은 깨달음을 바라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