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송종규 - 만년필
사무엘럽
2020. 11. 28. 14:51
먼 바다에서 보낸 당신의 엽서를 받았다 그곳의 소인이 찍힌 엽서가 당도하고 나서 만년필은 잉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어머, 하고 놀라는 내 입술에서 그것은 뚝뚝 떨어져 내리고
물고기 아가미에서 뻥긋뻥긋 그것은 쏟아져 나왔다
창밖에는 고개를 숙이거나 자괴감에 빠진 달빛들이 수북했다
사실, 몇몇 사람들과 만년필에 대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이미 지나간 시대의 불편한 유물이라는 의견과 죽음의 한 속설을 부록으로 달고 있다는 것 따위, 그러나 나는 만년필을 통해서 당신에게 건너가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핥는 태양의 혀에서 그것은 녹아내리고
당신이 없었던 시간의 갈기에서 그것은 흘러내렸다
검은 바다 겹겹
제 삶을 변명하고 싶은 문장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