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송종규 - 침착한 시계
사무엘럽
2020. 11. 28. 14:40
천천히 원을 그리며 커다란 시계 위를 걸어갔다 시간은 어차피 모든 사건을 관통해 가는 것 시간은 어차피 그 시절 그 미루나무 위에 머물고 있는 것
창밖에서 겨울이 첨벙첨벙 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수수꽃다리는 캄캄하게 저물었다 불행이 대수롭지 않게 어슬렁거리는 길목
막차는 끊겼다 내 안에는 안개가 자욱해서 생각이 콩나물처럼 자라났는데 미어질 듯한 둑이 겹겹이었는데
발바닥이 다 닳은 열두 시가 느린 팽이처럼 굴러갔다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사람의 전 생애가 방금 별빛을 통과해 갔다, 커다란 시계가 천천히 원을 그리며 걷고 있었다 반짝이는 미루나무, 수많은 잎사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