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조용미 - 시라쿠사의 밤
사무엘럽
2020. 11. 28. 08:45
비가 소리를 만든다 소리가 아주 멀리 있는 비를 데리고 온다 비와 소리가 구분되지 않는다 세상의 아름다운 말과 소리 들은 다 어떻게 합쳐지는 걸까
여기는 비가 내리고 있고 내리는 비는 구시가지 오르티지아의 골목길을 적시고 있다 먼 곳으로 오니 그곳이 꿈 같다 지옥도 멀리서 보면 타오르는 아름다운 붉은 행성처럼 보이는 걸까
디오니시우스의 귀에 들어왔다 소리들이 안으로 모여들어 수증기처럼 올라간다 누군가의 귓속으로 들어가 그의 이명이 되는 건 원치 않았던 이상한 일
귀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내 숨소리는 높고 거대한 동굴의 환청이 되어 내가 떠난 후에도 오래 디오니시우스였던 누군가의 귀를 어지럽힌다
말과 소리는 어떻게 다른 색이 되는 걸까 귓속의 어둠을 지나 눈부신 좁은 관을 통해 어딘가로 구불구불 돌아 나오니 어둠이 내리고 있다
성당 앞 사도 바울처럼 생긴 긴 머리 눈이 깊은 청년이 검은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무쇠 솥뚜껑 같은 악기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번지듯 맑고 고혹적인 소리가 난다
파피루스가 자라고 있는 연못의 난간에 기대어 나의 언어로 속삭이듯 오늘 여기, 고대, 그,리,스,의,도,시,로,왔,다,고 소리 내어 말해본다
시라쿠사의 밤 나의 모국어는 핸드팬보다 따뜻하고 신비한 음색으로 공허하고 공허하게 울린다 나의 속삭임이 파피루스의 언어가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