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녀 - 매달린 손

사무엘럽 2020. 11. 27. 15:04

 

양들의 사회학:김지녀 시집,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마스크제공), 단품 시소의 감정, 민음사

 

 

 나의 왼손은 매달려 흔들리고 있다

 주먹을 쥐었으나 무엇을 쥐고 있는지

 비어 있는 주먹 속에는

 가벼움이란 외설이 웅크려 있는지

 당신에게 흔든 나의 왼손은 결국

 바닥의 기호였을 뿐

 수없이 금이 간 바닥을 숨기기 위해

 주먹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꽉 쥐여 있다

 여리고 부드러운 살갗으로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고요한 바닥을 펼쳐놓고 본다

 미세하거나 굵게 얽힌 이 금들은 불안에 떨고

 나의 죽음을 예언하고 격분하지 않고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과 부정할 수 있는 힘에 대해

 나의 왼손은 잘 알고 있다

 그것을 기록하고 지우고

 다시 쓰다가 서글퍼하면서 메마른다는 것을

 나의 오른손도 잘 알고 있다

 여름은 이미 먼지에 싸여 있다

 나와 같이 매달린 주먹들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나의 왼손은 부서지기 직전이다

 떨어지기 직전이다

 뒤집히면서 나를 부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