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녀 - 창밖의 질주

사무엘럽 2020. 11. 27. 10:49

 

양들의 사회학:김지녀 시집,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마스크제공), 단품 시소의 감정, 민음사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창문들이 담고 있는 것, 전속력으로 달리는 심장의 운율 같은 것

 

 울퉁불퉁한 나의 창문에

 나뭇잎들이 생겼다 적의가 생겼다

 너라는 단어 앞에서 자꾸 벨을 누르고

 

 나는 아무도 내리지 않는 정거장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입술과 그림자가 흙먼지 속에서 사라지고

 

 왜 이렇게 나에겐 창문들이 많은가

 봄은 갔고, 바다처럼 색이 변하면서 너는 등을 돌렸다

 어제와 오늘이 경적을 울리면서

 옆을 지나가고, 창밖에는

 지금 눈이 내린다 펑펑, 모든 것에

 눈이 내린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지울 수는 없다

 

 나뭇잎 진 자리에 나뭇잎이 돋아나듯

 캄캄한 나의 창문에 너와 함께 보낸 밤이 흰 뼈를 드러내며 빛난다

 너의 심장이 멈출 때까지

 나의 심장이 멈출 때까지

 

 어떤 질주는 무수하게 멀어지지만 결국 제자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