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녀 - 양들의 사회학

사무엘럽 2020. 11. 26. 22:55

 

양들의 사회학:김지녀 시집,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방금 기이한 새소리를 들었다 (마스크제공), 단품 시소의 감정, 민음사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울타리를 칩시다

 우리 정원이 다 망가졌어요

 창문처럼 입들이 열렸다 닫혔다

 교회 십자가 하나 세워도 좋을 법한 초원 위에서

 양들이 풀을 뜯어 먹는다

 눈과 눈 사이가 넓구나

 얼굴 옆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 눈이 귀처럼 달려

 양들은 눈이 어둡다

 큰 눈은 잘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습니까?

 전 그냥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그대로 따라갈게요

 양 한 마리가 갑자기 달려 나간다

 그 뒤를 따라 우르르 쫓아가는 것은 양들의 습성

 벼랑인 줄 모르고

 와르르 떨어져 죽는 줄 모르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상관없다는 표정

 털이 계속 자라니까 신경 쓰여 못 살겠어

 일 년에 한 번씩은 온몸의 털을 깎아야죠

 그것이 문화인의 자세니까

 누가 먼저 할까요?

 

 초원은 고요하다

 이마는 순하고

 양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